이불킥과 양심의 법정

5편 공야장(公冶長) 제27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어쩔 수 없구나! 나는 그 허물을 발견하고 속으로 자책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子曰: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內自訟者也.”

자왈 이의호 오미견능견기과내자송자야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니 무슨 말일까요? 되풀이해 읽다 보니 ‘그 허물을 발견하고 속으로’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허물이 만천하에 다 드러나게 된 것이라면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공개적으로 자책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공개되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이 큰 손해를 입었다면 속으로 자책하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니 이 역시 제외돼야 할 것입니다.


그럼 남은 것은? 세상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허물입니다. 또 그로 인해 물질적 손해가 발생한 바 없는 허물입니다. 방안에 혼자 누워 있다가 부끄러워져 이불킥을 날려야 하는 허물입니다. 양심의 거울에 비췄을 때 한없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실 그렇게 이불킥을 날리는 사람은 많습니다. 핵심은 그렇게 이불킥을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를 송(訟)하는 것입니다. 訟은 공정한 판단을 가린다는 뜻에서 고소한다, 송사한다, 쟁론한다, 질책한다 등등의 뜻이 파생습니다. 여기선 양심의 법정에 세워두고 재판한다는 뜻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민망해하면서도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군자라면 그렇게 넘어가선 안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혹독하게 채찍질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가톨릭 신도의 고백성사나 공산주의자의 자아비판처럼 자신의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라고 까지는 않습니다. 공자도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은 알지 않았을까요? 굳이 남에게 알릴 필요까지는 없지만 속으로 혹독하게 자책만 한다면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자는 그런 사람을 봤습니다. 6편 '옹야' 제3장에서 안연에 대해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不貳過)”고 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의 발언은 안연을 제자로 들이기 전의 발언 아니었을까 하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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