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 구명과 함께 부끄러워한 것

5편 공야장(公冶長) 제25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교묘한 말과 가식적인 낯빛으로 지나치게 공손한 것을 좌구명은 부끄러워했는데 이 공구도 부끄럽다. 또 원망하는 마음을 감추고 그 상대를 벗 삼는 것을 좌구명은 부끄러워했는데 공구 또한 부끄럽다.”


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자왈 교언영색주공 좌구명치지 구역치지 익원이우기인 좌구명치지 구역치지



‘춘추’는 공자가 편수했다고 알려진 노나라의 역사서입니다. 간략한 사실관계만 기록돼 있는 이 ‘춘추’의 내용을 상술한 3대 저서가 있습니다. ‘춘추좌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입니다. 공양전과 곡량전은 자하의 제자인 공양고(公羊高)와 곡량적(穀梁赤)이 유교적 의리론에 입각해 춘추의 기록을 문답법으로 풀었다고 전해집니다. 두 책이 사상서에 가깝다면 ‘춘추좌전’은 역사서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당대의 역사적 배경 설명에 충실합니다.


바로 이 ‘춘추좌전’과 ‘국어’를 집필했다고 알려진 인물이 노나라의 대부까지 올랐다는 좌구명(초상화의 주인공)입니다. 국어(國語)는 춘추시대 노나라 외에 제후국의 역사를 소개한 책입니다. 그래서 후대에 춘추좌전을 ‘춘추내전’, 국어를 ‘춘추외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공양고와 공략적이 역사적 실존인물인가 대해선 설왕설래가 있지만 좌구명은 논어에 직접 등장하는 실존인물입니다.


허나 좌구명에 대한 기록 역시 희박합니다. 한나라 때 역사가인 사마천은 ‘좌구명은 실명한 뒤 국어를 지었다’고 했으나 그 전후사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송나라 때 백과전서인 ‘태평어람’에는 노정공이 좌구명에게 공자를 대부로 기용하는 문제를 삼환세력과 의논해 보라고 하자 “여우가죽옷을 짓기 위해 여우와 의논해 보라는 것과 같다”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자가 기용되면 삼환세력을 제거하려 할 터인데 그 숙청 대상들과 논의하라는 지시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훗날 여호모피(與狐謀皮)라는 사자성어의 어원이 됩니다.


논어나 태평어람의 내용만 보면 좌구명이 공자보다 손윗사람처럼 보입니다. 헌데 그런 사람이 공자가 죽고 난 뒤 춘추의 해설서를 썼다고 하니 모순처럼 느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희는 논어와 태평어람에 등장하는 좌구명과 좌전과 국어의 전자인 좌구명이 동명이인이라 주장하게 됩니다.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좌구명은 역사 기록을 관장한 사(史) 벼슬을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본디 이름은 구명인데 그 벼슬명이 태사(太史) 바로 아래의 좌사(左史)여서 좌구명으로 불리게 됐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습니다. 공자와 연배가 비슷했을 것이고 공자가 ‘춘추’를 편수하는 것을 도왔을 것입니다. 공자 사후 춘추좌전 집필을 주도했을 수도 있고 후학들이 집필하면서 자신들의 좌장인 좌구명의 이름을 앞세웠을 수도 있습니다.


좌구명이 공문의 제자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보다는 공자도 존중하던 동료 대부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라도 민자건처럼 연배도 있고 덕행이 출중한 경우엔 존중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하물며 인품을 인정하는 동료 대부라면 아무리 연하라 해도 자신보다 앞세워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구명(丘明)과 구(丘)의 라임을 살리는 문학적 표현력도 주목할만합니다.


실제와 이름이 부합하지 않은 것을 경계했던 공자가 실제를 포장하고 과장하는 교언영색을 질색한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足는 ‘발 족’ 말고 ‘지나칠 주’로도 새깁니다. 원문의 足恭은 지나치게 공손하다는 의미로 ‘주공’으로 새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감추고 그 상대를 벗 삼는 것’에 대해선 비판이 있습니다. 정치가라면 아무리 정적이라도 웃으며 대해야 하거늘 너무 감정을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비판입니다. 허나 ‘사교적 제스처로 친한 척하는 것’과 ‘벗으로 사귀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이 오히려 오독 아닐까요? 공자 발언의 요체는 ‘본심을 감추고 상대의 환심을 산 뒤 뒤통수 때리는 것’이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굳이 드러낼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걸 감추고 상대의 환심을 얻으려 하지 말라는 뜻으로 새기면 충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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