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24장
공자가 말했다. “누가 미생고를 올곧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구하자, 이웃집에서 식초를 빌려서 그에게 주었다.”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자왈 숙위미생고직 혹걸혜언 걸저기린이여지
미생고(微生高)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습니다. 사람이 우직할 정도로 올곧다 하여 유명해진 인물로 추정됩니다. 전국시대 때 책인 ‘장자’ 도척 편에 나오는 미생지신(尾生之信) 설화의 주인공 미생과 같은 인물을 모델로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노나라 사람으로 신의를 중시했던 미생은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 폭우로 강물이 불어 다리가 잠길 지경이 됐는데도 교각을 부둥켜안고 떠나지 않다가 익사했다는 설화의 주인공입니다.
‘사기’에 따르면 종횡가였던 소진은 이런 미생을 자신이 꺼낸 말을 목숨을 지켜 지킨 사나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반면 장자는 전설적 도적떼의 두목 도척의 입을 빌려 맹비판합니다. 도척은 자신을 설득하러 온 공자에게 반박하는 와중에 절개를 지키려 세상을 등진 백이‧숙제, 포초(鮑焦), 신도적(申徒狄), 개자추에 미생을 더한 6명을 언급하며 “명예와 명분의 덫에 걸려 생명을 경시하고 하늘이 내린 수명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이라며 제물로 바쳐지는 개돼지와 다를 게 없다고 말합니다.
도척의 비판에 따르면 공자는 이들 6명을 마땅히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자가 실제 칭송한 사람은 백이‧숙제 두 사람뿐입니다. 미생(미생고)에 대해선 오히려 진실로 올곧은 사람이 아니라고 비판한 내용이 이 장에 등장합니다. 식초를 얻으러 온 사람을 위해 이웃집을 수소문해 얻어다 준 게 그렇게까지 비판받을 행동까요?
올곧음에 초점을 맞춘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식초를 얻으러 온 사람에게 자신의 집 식초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지 않고 이웃집 식초를 자신의 것을 내주는 양 생색내며 내줬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첫째 잘못은 인색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잘못은 당시 귀했던 식초가 정작 자기네 집에 없는 것엔 개의치 않다가 객식구가 필요하다고 하자 생색을 내기 위해 무리해 얻어줬다는 것입니다. 둘 다 속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한 것이니 올곧다 칭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와 이름이 부합하지 않는 것을 싫어했던 공자다운 발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성이나 명분을 위해 실제적 삶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는 ‘장자’ 속 도척의 발언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명실상부할 때만 올곧음이 성립한다는 공자의 논리에 따르면 오늘날 유교적 규범 중 상당수가 올곧지 않은 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손님 접대를 한답시고 형편에 맞지 않게 과한 상차림을 내오는 것부터 올곧은 것이 아니니 과공비례가 됩니다.
그럼 나머지 네 사람은 어떨까요? 포초는 청렴한 삶을 살다가 나무를 끌어안은 채 말라죽었다는 주나라의 선비입니다. 신도적은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돌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든 은나라의 선비입니다, 개자추는 진문공이 간난신고를 겪을 때 허벅지를 베어 목숨을 구해줬지만 논공행상에서 제외되고 산속으로 숨었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진문공이 그를 내려오게 하려고 불을 지르자 노모를 껴안고 시체로 발견된 진나라의 선비입니다.
공자가 이들에 대해 직접 언급한 기록은 없습니다. 한나라 때 유학자 유향이 편찬한 ‘설원(說苑)’에는 후대의 창작으로 추정되는 설화가 등장할 뿐입니다. 자로가 진나라와 채나라 국경지대에서 굶주림으로 고생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자 공자가 자로를 타이르며 백이숙제와 포조, 개자추의 사례를 들면서 아무리 박학심모한 군자라도 때를 못 만나면 어쩔 수 없다고 답하는 내용입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설사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상을 등지거나 격정과 울분에 사로잡혀 목숨을 버리는 것을 공자는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등용해 주면 실행에 옮기고, 등용해주지 않으면 감춘다’는 용행사장(用行舍藏‧7편 ‘술이’ 제10장)의 출사관을 강조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감춘다는 것은 단순히 백이숙제나 개자추처럼 세상을 등지고 은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혈통이 아니라 리더십을 갖춘 사람을 지도자로 삼아야 한다는 군자학의 비의를 감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등용되지 않았다 하여 낙담하고 절망해 목숨을 버려선 안 됩니다. 소수정예 제자들에게 이를 비밀리에 전수해 언젠가 그들이 기용되면 그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자학의 정수에 근접했던 순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순자’ 불구 편은 돌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든 신도적의 행위가 예에 어긋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군자는 그저 힘겹고, 눈치나 보고, 후대에 명성을 남기기 위해 구차하게 구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합당한 행위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갈파합니다. 일국의 지도자가 되려면 그에 걸맞은 실체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군자학의 비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아니라 그저 자신이 올곧은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면 공자가 중시한 예에 부합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통렬한 비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