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23장
공자가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예전에 겪은 악행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기에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
子曰: “伯夷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
자왈 백이숙제불념구악 원시용희
백이와 숙제는 공자보다 500년 전의 전설적 은자(隱者)입니다. 그런데도 ‘논어’에 4차례나 등장합니다. 그만큼 공자의 의식세계에서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문제적 인물이었습니다. 공자가 ‘문무지도(文武之道)’라 하여 주문왕과 더불어 성인의 반열에 올린 주무왕의 최대 공적, 즉 은나라를 패망시키는 것에 반대한 사람들입니다. 주무왕을 칭송하면서 동시에 백이와 숙제를 칭송하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왕조시대의 지식인들은 공자가 백이숙제를 높이 평가한 것을 군주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로 풀었습니다. 한번 임금은 영원한 임금인데 어찌 갈아치울 수 있느냐는 취지에서 존경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백이에 대한 맹자의 발언으로 바로 반박 가능합니다. “임금답지 않으면 임금으로 섬기지 않았고, 벗답지 않으면 벗하지 않았다. 악인(惡人)의 조정에 서지 않았고. 악인과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
공자가 백이‧숙제의 생각에 동의한 것도 아닙니다. 18편 ‘미자’ 제8장을 보면 공자는 백이와 숙제를 필두로 7명의 일민(逸民)을 거론한 뒤 “나는 이들과 달라서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백이‧숙제와 달리 주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에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백이‧숙제를 높이 평가한 것일까요?
백이와 숙제는 스스로 왕을 선택하는 독립적 지식인의 자세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군자학은 혈통이 아니라 능력과 인품으로 지도자가 결정돼야 한다는 사상을 토대로 합니다. 왕의 자식이 무조건 왕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합니다. 이런 군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백이‧숙제는 어떤 사람이 왕이 돼야 하는지를 선택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 사람입니다.
물론 그 선택의 기준이 ‘한번 인금은 영원한 임금’이라는 전통적 군신관(君臣觀)에 입각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합니다. 군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백이‧숙제는 완성형의 군자가 아니라 절반의 군자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라며 자신은 그들과 다름을 전재하서도 감히 임금을 선택하려 한 그 자세를 높이 산 것입니다. 공자는 두 사람과 달리 “아비가 누구든 상관없이 도을 터득하고 덕을 쌓은 사람이 임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는 발언으로 자신이라면 부덕한 주왕보다 유덕한 무왕을 선택했을 것임을 암시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원주의자로서 공자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백이와 숙제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선택 자체는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100% 군자는 못 된다는 생각에 그들을 성인이나 현자가 아닌 일민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맹자는 이런 공자의 회색빛 심모원려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왕을 가려 택한 그들의 행위가 자신의 혁명론에 공명한다는 생각에 열광했을 뿐입니다. 그리곤 선악의 이분법의 잣대를 들이대 선인을 넘어 단숨에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고 맙니다.
맹자는 백이에 대해 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악인의 조정에 서고, 악인과 더불어 말하는 것을 마치 예복과 예관을 갖추고 진흙탕과 숯구덩이에 앉아있는 것처럼 여겼다.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을 밀어붙여 동네사람과 같이 서있을 때 그의 모자가 반듯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그 동네를 떠났으니 그대로 있으면 자신이 더럽혀질지 모른다 생각해서였다.” 그에 따르면 백이는 자신의 눈높이 맞지 않으면 매섭게 돌아서는 깍쟁이에 가깝습니다. 만사에 선악의 이분법을 적용하는 맹자를 닮았습니다.
반면 공자가 그리는 백이와 숙제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고 드는 좀생이가 아니라 뒤돌아서면 상대의 잘못을 잊어버리는 도량 넓은 사람들입니다. 그럼 왜 무왕을 용납하지 못해 끝내 굶어 죽은 것일까요? 공자가 생각한 백이‧숙제는 자신들의 뜻을 받아주지 않은 무왕이나 세상을 원망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기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타인에겐 너그럽되 자신들에겐 엄격한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자세를 견지했다고 본 것이니 공자 자신을 닮았습니다.
원문의 원시용희(怨是用希)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합니다. 시용(是用)은 ‘이 때문에’라는 접속사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고 여기서 원(愿)은 백이‧숙제가 원망한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7편 ‘술이’ 제14장에서는 자공이 백이‧숙제에 대해 질문할 때도 愿이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후회하다’라는 뜻으로 새겼습니다. 愿의 목적어가 자기 자신일 때는 후회하다는 뜻이 되고 타인일 때는 원망하다의 뜻이 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따라서 술이 편의 내용과 공야장 편의 내용을 종합하면 공자가 생각한 백이‧숙제는 타인을 원망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선택도 후회하지 않는 '불원(不愿)의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