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20장
계문자는 세 번은 생각하고 행동했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두 번만 생각해도 좋다.”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曰: “再斯可矣.”
계문자삼사이후행 자문지왈 재사가의
계문자(계행보)는 계손 씨 가문의 종주 중에 공자가 거의 유일하게 높이 평가한 인물입니다. 이 장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신중했을 뿐 아니라 공자가 태어나기 17년 전 그가 죽었을 때 ‘춘추좌전’의 기록이 말해주듯 청렴했습니다. ‘비단옷을 입은 첩이 없고, 곡식을 먹는 말도 없고, 금과 옥으로 장식된 기물도 없고, 일상용품도 오직 한 사람 몫밖에 없었다.’
계문자는 노문공-노선공-노성공-노양공 4대에 걸쳐 대부를 지냈습니다. 특히 노선공 이후 3대에 걸친 시대는 제후가 모두 두세 살에 재위에 오를 정도로 노나라 공실이 혼란할 때였습니다. ‘춘추좌전’은 그 시절 노나라를 지킨 양대 신하로 계문자와 맹헌자(중손멸)를 손꼽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정파와 사파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송유들의 눈에는 계문자가 다른 계손 씨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파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두세 살에 재위에 오른 노선공-노성공-노양공 시절 삼환세력의 권력을 공고히 한 주범으로 계문자를 지목합니다. 하지만 노문공(희흥)의 적장자들을 죽이고 겨우 두 살이던 서자를 제노선공으로 추대한 이는 노장공의 둘째 아들인 동문양중(동문수)이었습니다.
동문양중은 조카인 노문공의 애첩 경영과 불륜관계에 있다가 노문공이 죽자 노문공의 적자인 태자 희오와 그 동생 희시를 죽이고 경영의 두 살 된 아들(희퇴 또는 희왜)을 제후의 자리에 올리니 그가 바로 노선공입니다. 이후 노나라의 실권은 동문양중과 그의 아들인 공손귀보가 장악했고 계문자와 맹헌자는 오히려 그 견제세력이 됐습니다. 이는 노선공이 삼환세력을 제거하려다 급서하면서 동문양중 가문이 몰락한 것으로도 설명됩니다.
송유는 동문양중의 패륜행위를 계문자가 묵인했을 뿐 아니라 노선공의 즉위를 인정받기 위해 이웃 강대국인 제나라에 뇌물까지 썼다고 비판합니다. 계문자가 이를 통해 사익을 취했다면 그 비판이 맞지만 결국 공실의 안위와 제니라와 전쟁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크게 탓할 바가 못 됩니다.
게다가 노선공이 제후가 된 직후 이웃나라인 거나라의 태자 복이 자신을 폐위한 부왕을 죽이고 거나라의 보옥을 노나라에 바치며 귀의했을 때 계문자의 행보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노선공의 배후에 있던 동문양중이 이를 가납하려 하지만 계문자는 태자 복을 국경 밖으로 추방합니다. 그리고 “군부를 죽여 불효를 저지르고, 보옥을 훔쳐 불충을 저지른 흉덕(凶德)을 몰고 온 악인을 받아주면 백성이 본받을 것이 없게 된다”면서 “비록 한 사람의 현인도 얻지는 못했지만 한 사람의 악인을 제거했으니 공을 이뤘다고 할 순 없어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말로 설복합니다.
물론 ‘춘추좌전’에도 계문자가 자신의 작은 공을 과시하려 했고 예에 어긋나는 행실을 저지른 경우가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나라는 물론 이웃나라에서도 그가 노나라의 핵심 인재임을 인정하는 대목이 여럿 나옵니다. 특히 진(晉)나라에서 노나라를 길들이기 위해 계문자를 억류하고 죽이려 했을 때 그가 신의가 있고 청렴한 인물이라는 안팎의 청원을 듣고 풀어준 것만 봐도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송유는 계문자에 대한 이 장의 공자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해석합니다. 두 번만 생각해도 충분할 것을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다 보니 사사로움에 사로잡혀 바로 행동에 나서지 못한 것이라고 계문자를 에둘러 비판했다는 것입니다. 정통성이 없는 노선공과 그 배후인 동문양자를 바로 징치 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란 소리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계문자가 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고 참고 기다렸기에 결국 동문양자의 세력까지 제거하고 노선공 사후 노나라 공실까지 장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상주의자였던 공자가 그렇게까지 현실주의적 판단을 내리진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삼환세력의 수장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선사후를 실천한 지도자로 계문자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계문자만큼 심사숙고하진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로 결정한 것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라는 취지로 새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