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의 원형, 장문중

5편 공야장(公冶長) 제18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장문중은 점칠 때 쓰는 큰 거북을 보관하면서, 기둥머리에 산 모양을 새기고 대들보 위 동자기둥에 물풀 모양을 새겼으니, 그의 지혜로움이 어떠했겠는가?”

子曰: “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자왈 장문중거채 산절조절 하여기지야


공자보다 대략 150년 전 사람인 장문중은 ‘논어’에 두 번 등장하는데 비판의 대상으로만 등장합니다. 15편 ‘위령공’ 제14장에서 살펴봤듯이 당시 장문중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판이 높았기에 이를 반박하기 위함입니다.

‘춘추좌전’을 보면 장문중은 쌓은 덕(德)과 이룬 공적(功) 그리고 남긴 말(言)이 영원히 썪지 않을 것이라 하여 삼불후(三不朽)라고까지 미화되던 인물입니다. 공자는 이에 맞서 그가 삼불인(三不仁)과 삼부지(三不知)를 저질렀다고 비판합니다.

삼불인은 유하혜(전금)를 높이 기용하지 않은 것, 6관을 폐한 것, 첩이 방석을 팔아 백성과 이익을 다투게 한 것을 말합니다. 6관을 폐한 것에 대해선 6개의 관문을 폐쇄해 안보를 취약하게 했다는 의미와 6개의 관문을 설치해 통행료를 뜯어낸 것이란 해석이 엇갈립니다. 삼부지는 진귀한 거북 껍데기로 허황된 사치를 부린 것, 서열을 뒤집어 제사 지낸 것, 노나라 동문 밖의 봉황 모양의 섬을 신령하게 여겨 제사 지낸 것을 말합니다.

이 장의 내용은 삼부지에서 첫 번째 언급된 진귀한 거북껍데기로 허황된 사치를 부린 것에 대한 부연설명에 가깝습니다. 원문의 채(蔡)는 국가중대사가 있을 때 그 등껍질을 태워 균열이 생겼을 때 그 형태를 보고 점치는 데 쓰인 큰 거북을 말합니다. 이때 거북의 배껍질이나 소의 어깨뼈에 그렇게 점친 결과를 기록하니 이것이 한자의 원형이 된 갑골문이 됐습니다. 이렇게 점복을 치는 것은 왕이나 제후의 몫이니 일개 대부인 장문중이 넘봐선 안 되는 일입니다.

또 기둥머리에 산을 그려 넣는 산절(山節)과 대들보 위에 설치하는 작은 기둥(동자기둥)에 수초무늬를 새기는 조절(藻梲)은 왕실 사당인 종묘(宗廟)를 장식하는 무늬입니다. 헌데 이를 일개 대부가 점치는 데 쓰는 거북의 껍질을 보관해 두는 사당에 적용했으니 참람하고 무도 짓이 따로 없습니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벌인 사람이 삼불후라고 추앙받는 현실에 대한 공자의 통렬한 비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문중이야말로 공자가 그토록 싫어했던 위군자로서 향원(鄕原)의 원형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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