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네시스의 학문, 군자학

5편 공야장(公冶長) 제13장

by 펭소아

자공이 말했다. “시문과 고전에 대한 스승님의 말씀은 들을 수 있었으나 인성이나 천도에 대한 말씀은 듣기 어려웠다.”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자공왈 부자지문장 가득이문야 부자지언성여천도 불가득이문야



문장(文章)과 성여천도(性與天道)가 나란히 비교됩니다. 문장은 요즘 우리가 말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문학(文學)과 마찬가지로 시문(詩文)과 역사, 의례에 대한 텍스트를 말하니 고전(古典)으로 번역함이 좋을 듯합니다. 삶을 윤기나고 풍성하게 해주는 글들입니다. 성여천도는 인간의 본성과 하늘의 뜻을 말합니다. 세계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따지는 추상성 높은 형이상학 또는 존재론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자가 시문과 고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 반면 인성이나 천도에 대해선 거의 말한 바가 없다는 것은 공자의 군자학이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발 딛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면 보편적 지식인 소피아보다는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를 지향하는 학문이란 소리입니다. 신의 존재 증명이나 진리 탐구보다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좋은 삶을 구현하기 위한 최선의 길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자의 태도는 모든 지식의 중심에 신학이 위치한 중세시대 르네상스 지식인의 태도를 연상시킵니다. 그들은 신앙에 대한 것은 괄호 친 상태에서 라틴어와 헬라어로 쓰인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고전 텍스트에 열광했습니다. 성여천도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침묵하는 대신 시문과 역사가 담긴 문장에 심취한 것입니다. 그를 통해 소피아의 대상인 신앙과 프로네시스의 현실을 분리하고 현실 문제에 대해선 세속적이고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공자의 군자학 역시 세속적 합리주의를 지향했습니다. 국가적 구심력이 점점 약해지고 원심력이 강해지면서 권력과 재물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약육강식의 시대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을 구제하기 위한 좋은 정치를 모색하는 것이 그 핵심에 위치합니다.


따라서 어진 정치란 백성의 삶을 바꿔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서 좋은 정치를 말합니다. 군자는 그러한 정치를 실현해 줄 수 있는 주체로 새롭게 호명된 존재입니다. 천명(天命)이니 성인(聖人)이니 하는 표현은 그런 세속적 합리주의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과거의 전례를 끌고 와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입니다. ‘공자는 괴력난신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7편 ‘술이’ 제20장)‘ 역시 군자학의 이런 세속적 합리주의를 보여줍니다.


맹자의 도덕심성론이나 주자의 이기론(理氣論)의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이처럼 프로네시스의 학문이었던 군자학을 만고불변의 추상적 진리를 추구하는 소피아의 학문으로 탈바꿈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공자를 지고지순한 성인으로 치켜세우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진리의 언어로 둔갑시켰습니다. 이 장의 내용 또한 “공자가 심오한 말씀도 하셨는데 제자들이 못 알아들은 것”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하지만 공자는 결코 절대불변의 진리를 추구한 성인이 아닙니다.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답안을 고민한 중용의 실천가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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