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물욕 물시어인’의 원조

5편 공야장(公冶長) 제12장

by 펭소아

자공이 말했다. “제 사회적 자아는 남이 제게 뭔가를 가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 본래적 자아 역시 남에게 뭔가를 가하는 것이 없기를 원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단목사야, 너답지 않은 경지에 이르렀구나.”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자공왈 아불욕인지가저아야 오역욕무가저인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자왈 사야 비이소급야



3가지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긴 장입니다. 이 장에 대해 대부분의 주석서는 ‘논어’에서 공자가 되풀이해 강조한 ‘기소물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과 거의 동일한 취지의 발언을 자공이 꺼내자 “네가 감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고 핀잔을 줬다고 풀이합니다. 하지만 저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에 공명하는 말을 했는데 칭찬을 못해줄망정 면박을 준다는 것이 도통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답변 중 '비이소급야(非爾所及也)'는 “네가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도 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다니 너답지 않구나”로 풀 수도 있습니다. 자로의 통찰에 공자가 감탄하며 “네가 웬일이냐 그런 말을 다하고?”라며 격려를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


두 번째로 자공의 답변 원문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습니다. ‘나’라는 단어를 아(我)와 오(吾)를 나눠서 썼다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로 통일해 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왜 둘로 나눠서 썼을까요? 자공처럼 언어의 귀재인 사람이 별생각 없이 2개의 표현을 병치했을까요?


똑같이 나를 뜻하지만 我와 吾는 뉘앙스가 다릅니다. 我가 사회적 관계망 속에 위치한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나를 지칭한다면 吾는 그로부터 자유로운 본연의 나, 자연 상태의 나를 지칭합니다. 칸트의 개념을 빌려 말하자면 我가 ‘대자적 나’라면 吾는 ‘즉자적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장자’ 제물론에 등장하는 ‘오상아(吾喪我)’라는 표현을 들 수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내가 나를 잃다’라는 뜻입니다. 문맥상으로는 ‘본래적 나’가 ‘세속에 물든 나’로부터 벗어났다란 뜻입니다. 옳고 그름과 우리 편과 저쪽 편을 구별하려는 사회적 그물망 속의 나로부터 해방돼 천지자연과 동일시되는 본연의 나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한자의 어원을 보면 我에는 톱이나 창으로 무장했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따라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나’란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한자연구가인 시라카와 시즈카에 따르면 吾는 본디 고대 제례의식에 쓰인 축문그릇(口)에 신의 기운이나 형상(五)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신의 뜻을 겸손히 받고 있는 나를 뜻하니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를 높이는 나란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我가 자부심 넘치는 사회적 자아라면 吾는 신 앞에 벌거벗은 실존적 자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공의 발언 원문에서 가(加)는 누군가가 내게 폭력, 세금, 노역 같은 고통을 부가한다는 취지로 쓰였습니다. 자공은 거기에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나에 해당하는 我를 떠올렸습니다. ‘대자적인 나’ 또는 사회적 자아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압제와 억압에 대한 저항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해방되기를 희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불욕인지가저아야(我不欲人之加諸我也)'에 함축된 뜻입니다.


자공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역시 언어의 귀재답게 我와는 다른 吾로 생각이 옮겨갔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관계망에서 자유로운 나, 신 앞에 벌거벗은 ’ 즉자적 나‘인 吾는 어떨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자세를 갖기에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부가하기를 원하지 않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사회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가 상통하는 점이 있구나.’ '오역욕무가저인(吾亦欲無加諸人)'에 숨겨진 깨달음입니다.


공자는 제자의 이런 깊은 통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공의 생각의 깊이가 괄목상대(刮目相對)할 정도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한 것에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늘 자공의 재승박덕(才勝薄德)을 경계했던 터라 갑작스러운 칭찬이 독이 될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반은 찬사의 뜻으로, 절반은 경계의 뜻으로 “아이고 이 놈 봐라? 평소의 너답지 않게 높은 경지에 이르렀구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게 아닐까요?


하나 더 남았습니다. 세번째는 어쩌면 ‘기소물욕 물시어인’이란 공자의 표현이 자공의 이 같은 생각을 접한 뒤 이를 단순 명쾌하게 가다듬은 것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입니다. 하나를 들으면 둘은 안다고 자부했던 자공이 스승의 사상을 온축한 가르침을 먼저 듣고 난 뒤 그와 유사한 표현을 꺼내 들었을 리 만무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던진 생각의 씨앗을 스승이 발효시킨 표현을 듣는 순간 속으로 뛸 듯이 좋아할 사람이 또한 자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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