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11장
공자가 말했다. “나는 아직 굳센 사람을 보지 못했다.” 누군가 말했다. “신정이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신정은 욕심이 많거늘 어떻게 굳셀 수 있겠는가?”
子曰: “吾未見剛者.” 或對曰: “申棖.” 子曰: “棖也慾, 焉得剛?”
자왈 오미견강자 혹대왈 신정 자왈 정야욕 언득강
굳셀 강(剛)은 2가지 뜻이 있습니다. 힘차고 튼튼하다는 뜻과 뜻한 바를 굽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주석서는 여기서 공자가 말한 굳셈은 후자의 뜻에 해당한다고 풀이합니다.
핵심은 욕심(慾)이 많으면 굳셀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도덕심성을 중시한 성리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욕심이 많으면 굳센 마음을 지닐 수 없다고 풀이합니다. 어디 마음만 그럴까요? 욕심이 많은 사람은 육체적으로도 힘차고 튼튼할 수 없습니다. 먹고픈 게 많으면 몸에 안 좋은 음식을 탐하기 마련입니다. 재산과 권력에 욕심이 있으면 자신의 몸을 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부리려고만 하니 건강 또한 좋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욕심이 많으면 몸도 마음도 굳셀 수 없음을 지적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는 “나는 아직 굳센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공자의 첫마디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벼슬자리를 제안받고도 단호히 거부한 민자건, 원헌, 칠조개 같은 제자들은 굳센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개 일찍 세상을 떴으니 몸은 굳세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자로, 염유, 번수와 같은 제자들은 전장에서 용명을 떨쳤으니 몸이 굳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보기엔 마음까지 굳세다고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맘과 몸을 함께 고려할 때 “나는 굳센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공자의 발언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공문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도 자신의 성에 안 찬다는 발언인데 어린 제자 중에 한 명이 신정(申棖)을 거명합니다. 신정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입니다. 훗날 공문 72현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주(周) 또는 자주(子周)로 육예(六藝)에 정통했다는 기록만 전해집니다. ‘중니제자열전’에는 신당(申黨)으로, ‘공자가어’에는 신적(申績)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육예는 공문의 기초과목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9급~7급 공무원에 해당할 사(士)의 벼슬살이를 하기 위해 필요한 과목입니다. 그에 정통했다고 하니 신정은 초급반 제자들의 사범정도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제자들에게 대단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표현을 빌리면 육예는 입문(入門)에 해당하니 그것에 정통했다 해도 겨우 마루에 오르는 승당(昇堂)에 불과합니다. 마루에서 인지용(仁知勇)의 고급반 수업을 들어야 방에 들어가는 입실(入室)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그때부터 군자라 칭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겨우 승당의 경지에 들어선 신정이 자로나 염유도 넘보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니 공자의 반응이 매서울 수밖에 없습니다. 신정은 기예는 뛰어날지 몰라도 마음수양이 아직 안 됐는데 어찌 굳세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맞받아 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신정이 군자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단정해선 안 됩니다. 그보다는 공자가 생각하는 굳셈(剛)의 기준이 매우 높다는 의미로 새겨야 할 것입니다.
공자가 어짊에 근접하게 해 준다며 꼽은 4가지 성품인 강의목눌(剛毅木訥) 중에서 강(剛)을 첫머리에 뽑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13편 ‘자로’ 제27장). 강(剛)과 의(毅)는 둘 다 굳세다는 뜻을 지닙니다. 그래서 강은 강직함, 의는 굳건함으로 차별화해서 새겼습니다. 강직함이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유리함과 불리함에 따라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이라면 굳건함은 그렇게 강직한 뜻이 현실 속에서 실현될 수 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의지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장을 접하면서 강직함에는 반드시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도 녹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마음만 강직할 뿐 육체가 그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쓸데없는 고집으로만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몸과 마음이 모두 강인해야 뜻한 바를 현실에서 이뤄내기 위해 수많은 좌절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텨낼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