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살아있는 교자재

5편 공야장(公冶長) 제10장

by 펭소아

재여가 낮잠을 잤다.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은 손질 해봐야 소용없다. 재여를 나무라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자가 다시 말했다. “예전에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가 말한 것을 들으면 그것이 실천될 것이라 믿었다. 이제는 그가 말한 것을 듣고 실천되는지를 살펴보게 됐다. 재여로 인해 바뀐 것이다."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재여주침 자왈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 어여여하주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자왈 시오어인야 청기언이신기행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어여여개시



재여(宰予)는 말솜씨가 뛰어나 공문십철에 꼽힌 재아의 본명입니다. 공자보다 스물아홉 연하의 노나라 출신으로 강대국인 제나라의 대부가 됐으니 공문에서 가장 성공한 제자 중 한 명입니다. 그러나 노나라 대부가 된 염유와 더불어 공자의 비판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이기도 합니다.


원래 그의 자는 자아(子我)이니 이름에 나 여(予), 자에 나 아(我)를 쓸 정도로 자의식이 강한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공자의 가르침에도 아집을 꺾지 않아 혹독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장의 비판이 가장 혹독하지 않나 싶습니다. 썩은 나무와 거름흙에 비유하며 가르쳐봐야 도로아미타불이 따로 없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이유가 낮잠 한번 잤다는 것인데 공자가 가장 질색하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비약합니다. 그로 인해 사람을 판단할 때 말솜씨뿐 아니라 말한 것을 실천하는지 따져보게 됐다니 파문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입니다.


‘중니제자열전’을 보면 재아가 제나라 대부로 있다가 전항(진항)과 함께 난을 일으켜 주군인 제간공 시해를 도왔다가 멸문지화를 입었고 공자가 이를 수치스럽게 여겼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전항의 제간공 시해를 다룬 ‘춘추좌전’에는 재아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당(唐)나라의 역사가 사마정이 ‘사기’에 주를 달거나 오류를 바로 잡은 ‘사기색은(史記索隱)’을 보면 당시 제간공의 총애를 받던 감지(闞止)라는 대부도 살해됐는데 그의 자가 재아와 같은 자아(子我)여서 사마천이 혼동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보면 재아는 공문십철에 뽑힐 만큼 똑똑했으나 워낙 주관이 뚜렷해 공자와 충돌이 잦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똑똑했던 안연은 공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수긍하고 반색했고 눈치 9단이던 자공 또한 공자의 질책이라면 납작 엎드렸습니다. 우직했던 자로를 제외하면 공자 말에 제법 논리적으로 어깃장을 놓는 제자는 재아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맷집도 좋았다고 봐야 합니다.


공자는 그런 재아를 요즘 표현으로 ‘악마의 변호사’쯤으로 여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날 선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그래, 너만이라도 나에게 거침없이 반대하고 비판해 다오’라는 생각으로 재아를 계속 가까이 뒀을 것이란 추론입니다. 재아 역시 그런 스승과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더욱 대차게 대드는 악역을 수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격한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 발언 수위가 점점 높아졌겠지만 공자만큼 재아 역시 뒤끝이 없는 사내였기에 가능한 장면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암묵적 신뢰관계는 다른 제자들에게 본보기가 필요할 때 재아를 그 대상으로 삼아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것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부모 삼년상 문제에 비하면 훨씬 사소해 보이는 낮잠 문제에 대한 비판수위가 훨씬 심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문을 닦고 자신을 수양함에 있어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취지로 일벌백계를 가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자다가 날벼락 맞고 어쩔 줄 모르는 재아에게 남몰래 윙크를 보내는 공자가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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