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9장
공자가 자공에서 물었다. “너와 안회는 누가 더 나으냐?”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넘보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데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만 못하지. 나와 너는 그만 못하지.”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자위자공왈 여여회야숙유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대왈 사야하감망회 회야문일이지십 사야문일이지이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자왈 불여야 오여여불여야
공자학단의 구성원을 스머프와 비교할 때 안연(안회)을 모든 스머프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스머펫에 비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공마저 안연에 대해서만큼은 구김살 하나 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저 같은 것은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진짜 감동은 그다음입니다. 수많은 제자의 우러름을 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훗날 만세사표(萬世師表)로 불리게 될 공자마저 “안연의 발끝에 이르지 못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화답하고 나선 점입니다.
공자를 천의무봉의 성인으로 추앙했던 송대의 성리학자들은 도저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안연이 뛰어나다 해도 어찌 감히 성인을 능가할 수 있겠느냐며 어이없는 궤변을 펼쳤습니다. 원문의 ‘오여여불여야(吾與女弗如也)’를 “나도 네가 안연만 못하다는 것을 허여(인정)한다”로 풀이한 겁니다. 차라리 자공이 느꼈을 열등감을 위로해주려고 “나 역시 안연에겐 미치지 못하니 너무 낙담하지 말거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공자는 그런 꼼수를 부리거나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누구를 실제보다 깎아 말하고, 누구를 실제보다 과하게 칭찬하더냐?”(15편 ‘위령공’ 제25장)라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설정한 앎의 4단계가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아는 생지(生知), 배워서 아는 학지(學知),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배우는 곤학(困學), 아예 배우지 않는 불학(不學)입니다(16편 ‘계씨’ 제9장). 공자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그는 스스로를 2단계인 학지정도로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허나 안연만큼은 최고의 경지인 생지에 가깝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안연이 교만해질까 저어돼 입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연만큼이나 똑똑하다고 여겼던 자공, 더욱이 사람 보는 눈이 예리한 그 자공마저 안연의 비범함을 깨끗이 승복하고 나서자 평소 안연에게서 느낀 경이로움과 자공의 대답을 듣고 느낀 기특함이 함께 공명하면서 공자의 심금을 울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훗날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표현의 원형이 될 극적인 찬사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네가 봐도 그렇지? 안회야말로 우리 같은 사람은 넘볼 수 없는 족탈불급의 천재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