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7장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아야 한단 해도 나를 따를 그 사람은 중유(자로)일 것이다.”
자로가 이를 듣고 기뻐했다. 공자가 말했다. “중유가 용감함을 좋아하는 것은 나를 능가하지만 그 재목을 취한다 해도 쓸 곳이 없구나.”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자왈 도불행 승부부우해 종아자 기유여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자로문지희 자왈 유야호용과아 무소취재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를 천하주유 당시 공자를 발탁하는 나라가 없다는 뜻으로 새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를 기용하지 않으면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발상이야말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요, 따라서 공자가 좋아할 리 만무한 생각입니다. 원문 그대로 도가 사라져 세상이 혼탁해졌다는 뜻으로 새김이 좋을 듯합니다.
한마디로 말세가 와 속세를 등지고 살아야 할 때를 말합니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머물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서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8편 ‘태백’ 제13장)의 내용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럴 때는 보통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데 공자는 특이하게도 망망대해로 들어갈 생각을 합니다. 이를 두고 예를 잘 아는 동이족의 땅을 그리워해서라는 식의 해석은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따로 없습니다. 그보다는 노나라가 황해를 접하고 있기에 중원 땅을 떠나기 위해선 바다를 건너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정처 없이 바다를 떠돌게 됐을 때 공자 자신을 따를 사람으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자로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우직한 의리의 사내라는 소리입니다. 자로 역시 그 말을 듣고 스승님이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신다며 기뻐합니다.
공자는 마냥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좋아함에 있어선 내가 자로를 이길 수 없지”라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는데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자로를 우직한 무부 취급을 했던 성리학자들은 “용감하면 뭐 해, 사리를 헤아려 의에 맞게 절제할 줄 모른다”라고 해석합니다. 일부는 “용감해봤자 뗏목 만들 목재도 못 구할 것”이라 새깁니다. 역시 다혈질 성격이라 자로를 데려가려 해도 실질적 도움이 못 된다는 해석입니다.
두 번째 해석이 더 낫긴 합니다. 무소취재(無所取材)의 재(材)를 뗏목 만드는데 쓰는 목재와 연결해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문학성이 풍부했던 공자니까 당연히 뗏목(桴)과 목재(材)의 유비관계를 염두에 두고 쓴 표현일 것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풀면 “목재를 취해도 둘 곳이 없다”입니다. 이를 발전시키면 자로와 같은 재목이 있어도 그를 쓸 곳을 찾지 못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로와 같은 인재가 자신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의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쓰임새에 맞는 자리를 찾아줘야 하는데 자신이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자로야 말로 바다를 떠돌 뗏목의 목재감이 아니라 일국의 병력을 지휘할 대장군감인데 자신과 같은 못난 스승을 만나 그 용력과 재주를 펴볼 기회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배어 있는 표현으로 새기는 것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서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