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5장
어떤 사람이 말했다. “염옹은 어질긴 해도 말주변이 없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말주변을 어디에 쓰겠는가? 남과 말다툼할 때 구변 좋게 응수한다고 해도 결국 남의 미움만 더 살 뿐이다.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으나 말주변을 어디에 쓰겠는가?”
或曰: “雍也, 仁而不佞.”
혹왈 옹야 인이불녕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자왈 언용녕 어인이구급 누증어인 부지기인 언용녕
염옹은 염씨 3형제 중 둘째인 중궁을 말합니다. 덕이 뛰어나 공문십철에 꼽혔고 공자로부터 “남면 할만하다”라는 극찬을 받은 전법제자입니다. 누군가 그 중궁이 어질긴 하지만 녕(佞) 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佞은 기본적으로 아첨을 잘한다는 뜻입니다. 출세를 하려면 권력자의 귀가 솔깃할만한 찬사를 잘 늘어놔야 하는데 이런 재주가 佞이니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내는 재주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천상유수처럼 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말을 잘한다’는 뜻도 갖게 됐습니다.
성리학자들은 도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경전 해석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부도덕하게 여겼습니다. 내면의 덕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입만 살아있는 것이라고 공격했죠. 그러다 보니 조리 있게 말 잘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라는 ‘논어’의 눌언민행(訥言敏行)의 테마도 자신들 입맛에 맞게 변조해 ‘말 잘하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 없다’는 궤변을 주조했습니다. 당연히 이 장에 등장하는 佞도 아예 ‘말재주가 좋다’로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발언 속에서도 드러나듯 佞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접대성 멘트’를 잘 날리는 것을 뜻합니다. 공자는 여기에 다른 사람과 말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것을 더했습니다. 한마디로 말로써 실체 또는 본질과 다른 허상을 빚어내고 그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성채를 쌓는 것이 공자 머릿속의 佞입니다.
공자는 조리 있게 말 잘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 것이 아닙니다. 그럴듯한 말로써 실체를 왜곡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공리공론에 빠지는 것을 싫어한 것입니다. 전국시대에 등장하게 될 소진과 장의 같은 유세가(遊說家)나 혜시와 공손룡 같은 명가(名家)처럼 말의 성찬으로 본질을 가리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중궁이 佞하지 못하다고 한 어떤 사람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할 줄을 모른다는 취지로 말한 것입니다. 말재주가 부족하다고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머릿속 佞은 그럴듯한 말로 세상을 속이고 어지럽히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말합니다. 주파수가 살짝 다릅니다. 중궁의 경우는 교언영색하지도 않지만 말솜씨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둘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표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佞을 '말주변 있다'로 풀어 봤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앞서 자로, 염유, 공서화에 대해 “어진 지는 알지 못한다(不知其仁)”라고 했던 공자가 중궁에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쓴 점입니다. 중궁은 공문십철 중에서 덕행이 뛰어난 4인에 듭니다(11편 ‘선진’ 제2장). 또 공자가 “남면 하게 할 만하다”(6편 ‘옹야’ 제1장)했으니 제왕의 자질을 갖췄다는 소리입니다.
그런 중궁에 대해서조차 不知其仁이란 표현을 쓴 것이야말로 어짊이 덕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또 어짊이 일률적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재확인시켜줍니다. 도와 덕의 조율을 통해 국가 대소사를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지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유동적 경지가 어짊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