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3장
공자가 자천을 평하여 말했다. “군자답도다, 이 사람은! 그러나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군자다움을 취할 수 있었겠는가?”
子謂: “子賤, 君子哉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자위 자천 군자재약인 노무군자자 사언취사
자천(子賤)은 노나라 출신 공자의 제자입니다. 성은 복(宓), 이름은 부제(不齊)이며, 자가 자천입니다. ‘중니제자열전’에는 공자보다 30세 아래로, ‘공자가어’에는 40세 연하로 소개돼 있습니다. 단보(單父)라는 고을의 읍재를 지냈는데 그때의 경험을 두고 공자와 나눈 대화가 ‘공자가어’에 자세히 소개돼 있습니다.
공자가 자천에 묻습니다. “네가 단보 땅을 다스릴 때 백성이 기뻐했다는데 무엇을 했기에 그러했느냐?” 자천이 답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기게 하고, 자식은 고아가 된 사람을 긍휼히 여겨 상을 당하면 함께 슬퍼하도록 했습니다.” 공자는 “훌륭하다”면서도 “보통 사람들(小民)에게 작은 예절(小節)을 지키게 한 것이니 아직 충분치 않다”고 답합니다. 자천은 다시 “단보에서 아버지처럼 모신 사람이 셋, 형처럼 모신 사람이 다섯, 벗으로 사귄 사람이 열한 명이 있었다”라고 답합니다. 공자는 “효제(孝悌)를 가르치고 선의의 실천을 보여줬을 것이니 중산층(中人)이 따르게 한 중간 정도의 예절(中節)을 실천한 것이나 아직 부족하다”라고 말합니다.
자천은 마지막으로 “저보다 현명한 사람 다섯이 있어서 그들을 섬기며 지도편달을 받아(稟度) 도를 배웠다”라고 답합니다. 공자는 그제야 크게 감탄하며 “요순도 천하의 의견을 물어 자신을 보필할 현명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애썼는데 현명한 사람(賢人)은 많은 복의 근원(百福之宗)이자, 신명함의 주인(神明之主)이기 때문”이라며 “네 다스림을 받기엔 너무 작은 땅이었던 것이 안타깝구나”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논어’에 딱 한번 등장하는 자천이 ‘중니제자열전’에서 열네 번째로 언급될 정도로 비중 있게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공문에서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지라도 현장 정치를 통해 도와 덕을 조율한 어짊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 공자에게 자천이 어지냐고 물었다면 “그 어짊을 알지 못한다(不知其仁)”라고 답하지 않았을 이유이기도 합니다.
후대의 가필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 장의 내용을 이해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자천이 노나라의 작은 고을을 다스리면서도 다섯 현인의 지도편달을 받은 것을 상찬하며 군자의 도를 실천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자천이 군자다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공자가어의 에피소드가 없었다면 자천에게 군자다움을 알려준 노나라 사람은 공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니 결국 자화자찬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공자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군자다운 현인를 찾기 위해 역사 속에 묻혀있던 요순을 발굴해 내고, 동시대 선배로서 정나라의 자산과 제나라의 안영을 높이 평가할지언정 스스로를 현인이나 인자로 칭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