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변이냐 눌변이냐는 중요치 않다

4편 이인(里仁) 제24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더라도 행동은 민첩하고자 한다."


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자왈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



눌언민행(訥言敏行)의 테마가 등장하는 장입니다. 말과 행위를 비교하면서 군자라면 말은 어눌하게 하더라도 행동은 민첩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군자는 말보다 행동이 더 빠른 사람이요, 말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리학자들은 말보다 행동이라는 공자의 상대적 발언을 말 잘하는 사람치고 군자가 없다는 절대적 교리로 둔갑시켰습니다. 언행일치를 강조한 발언을 졸지에 더듬더듬 말 못 하는 것이 군자의 필요조건 중 하나라고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이는 공자의 발언 취지와도 맞지 않고 조리 있게 말 잘하는 사람이었던 공자와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아전인수가 발생한 것일까요? 이와 관련 남송의 성리학자 호인(胡寅‧1098년~1156년)은 흥미로운 촌평을 남겼습니다. ‘이인’ 편 제15장~제24장 10개장은 자여(증자)의 문인이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자여가 어떤 사람입니까? 군자학의 비의를 깨치지 못하고 두 기둥 중 치평학은 외면하고 수제학만 들입다 판 사람입니다. 공자의 도를 일이관지 하는 것이 충서(忠恕)이며 그 실천으로서 효행이 최고라고 주장한 분입니다.


하지만 정작 공자로부터는 “노둔한 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공문십철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공급)의 스승이 되고 그 학맥이 맹자로 전해지면서 주자에 의해 공자의 정통 계승자로 둔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공자 사당에서 자장을 밀어내고 10대 제자에 들더니 급기야 안연 다음의 넘버3로 등극합니다.


자여는 아마도 공자나 자공과 달리 말솜씨가 별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눌언민행이란 표현에 귀가 쫑긋했을 것입니다. 또 그 문인들이 말주변과 관련된 공자 말씀을 ‘논어’에 집중 수록하면서 언행일치를 강조한 내용을 군자는 눌언민행하다고 ‘악마의 편집’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학의 정수가 안연‧자여-자사-맹자 학맥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 도덕주의자 주희는 이에 부화뇌동해 “말 잘하는 사람치고 군자가 없다”는 견강부회의 메시지를 전파한 것입니다.


공자 발언의 핵심은 말을 잘하고 못하고에 있지 않습니다. 달변이든 눌변이든 상관없이 말로 뱉은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솜씨가 청산유수였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은 재여를 꾸짖으며 “재어로 인해 그가 말한 것을 듣고 실천 여부를 살펴보게 됐다”는 청언관행(聽言觀行) 역시 언행일치를 강조한 것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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