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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Jun 23. 2023

고지라의 역설과 생떼부리기

2023년 6월 16일

일본은 세계 최초의 피폭국가다. 그로 인해 원자폭탄과 방사능에 대한 일본인의 공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이해되고 남는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그런 일본의 공포가 빚어낸 세계적 문화상품이 있다. 1954년 처음으로 영화화된 이후 일본 괴수 시리즈의 대명사가 된 고지라다. 


흉칙한 거대공룡 고지라는 핵실험으로 인해 깨어난 고대생명체다. 고지라는 대부분 태평양을 건너 일본 열도로 상륙하면 열도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한다. 물론 고지라는 방사능이 빚어낸 괴수가 아니다. 오히려 방사능 오염으로 출몰하는 괴수들을 물리친다는 점에서 인류의 잘못으로 빚어진 지구생태계 교란을 바로 잡는 원초적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지라가 등장한 배경에 원자력과 방사능으로 인한 지구생태계 파괴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고지라 시리즈의 최초 영화가 1954년 3월 미국이 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섬에서 실시한 수소폭탄 실험의 여파로 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 어선의 선원들이 피폭되는 일이 발생한 뒤 제작됐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인의 이런 집단적 공포는 반백년의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도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었다. 중의원과 참의원이 만장일치로 소련 정부에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공개 요청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거의 매일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기 중 방사능 수치를 확인하는가 하면 체르노빌 인근 동유럽은 물론이고 서유럽까지 총 12개국의 식품 수입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1993년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일본 근해에 버린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바다는 방사능 쓰레기장이 아니다”라면서 “당장 핵폐기물 투기를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원폭과 방사능에 대한 이런 집단적 공포는 고지라 시리즈를 타고 세계로 퍼져갔고 급기야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미국마저 이를 수입해 '고질라'라는 이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연달아 제작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태평양 연안을 접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4개 중 3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 피폭국이자 고지라 수출국이던 일본의 태도는 돌변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그처럼 강경했던 일본이 후쿠시마 산 수산물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수입을 종용하더니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냉각수와 유입된 지하수가 합쳐진 오염수에서 64개의 방사성 핵종 중 62개를 제거하고 30년에 걸쳐 바닷물에 방류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이는 분산된 방사선원을 한곳에 모아서 밀봉한 뒤 안전한 심층지하에 보관함으로써 지구 생태계 교란을 최소화한다는 방사선 제염원칙에 어긋난다. 


일본 열도에 갇아뒀던 독극물을 희석시켜 세계 전체에 뿌리겠다는 것이니 결국 고지리와 유사한 괴수들을 출몰하게 만들지도 모를 짓이라도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감행하겠다는 것과 같다. 방사능에 대한 자신들의 공포는 정당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포는 비과학적이라 부당하다는 것이니 내로남불이 따로 없는 셈이다.


일본은 피폭국이라는 것을 내세워 제국주의 시절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유야무야 넘기려 해왔다고 우민은 판단한다. 전무후무한 피해 사실을 앞세워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덮으려는 은폐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이중 정체성 빚어낸 분열증적 행태가 일본이 소위 '정상국가'가 되는데 엄청난 걸림돌이 된 것도 사실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과거의 피해국으로서 호들갑을 떨던 모습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간접 피해국을 배려하고 양해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것도 일본의 분열된 국가이성의 반영 아닐까? 방사능 공포로 탄생한 고지라를 세계적 수출상품으로 만든 나라가 어떻게 고지라에 투영된 대중적 공포에 대해 나몰라라 할 수 있는 걸까?


우민은 일본인들이 말하는 정상국가라는 것이 과연 지구상에 존재하느냐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분단국가라는 질곡을 짊어진 대한민국도 정상국가가 아니듯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 일상적 전쟁 상태에 놓인 미국 또한 정상국가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일본 보수충은 지구상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 정상국가에 집착하는 걸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과학의 이름을 팔아 옹호하며 생떼부리기에 나선 한국 보수의 모습을 보면서 우민은 정상국가에 집착하는 일본 보수와 선진국에 집착하는 한국의 보수가 너무도 닮은꼴이란 걸 새삼 발견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적 선도국가가 됐건만 일본은 여전히 정상국가가 되기에 부족하고,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에 국격이 만힝 부족하다고 양국 보수층은 주장한다. 그것은 몸은 진작에 성인이 됐거만 여전히 마음의 준비가 안됐기에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는 키덜트의 의존적 마음자세다. 


성인이라면 마땅히 자신들의 선택과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양국의 보수층은 그러기 싫고 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생각에 정신적 성장을 멈추는 길을 택한 것이다. 엄청난 부자에 영향력도 막강한 미국이란 부모의 그늘 아래 안주하면서 일본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가기를 택한 것이고 한국은 촉법소년의 보호망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린이용 미니어처 괴수물인 고지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착과 한국 진보의 내로남불에 대해선 그렇게 분격하면서도 일본의 내로남불에 대해선 눈뜬 장님 놀이를 펼치는 한국 보수세력의 이중성을 동시에 설명해주는 무의식적 진실 아닐까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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