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의 잣대를 쓰는 법

4편 이인(里仁) 제10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천하를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그래 마땅한 것도 없고, 그래선 절대 안 되는 것도 없다. 의로움을 잣대로 삼을 뿐이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자왈 군자지어천하야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



무적무막(無適無莫)이란 사자성어의 출처가 되는 장입니다. 여기서 적과 막은 대조적 뜻으로 쓰였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디 適은 상제의 후손(곧 천자의 혈통)이기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에 적합하다는 뜻에서 적합하다, 조건에 부합하다, 합당하다는 뜻을 갖게 됐습니다. 또 목적에 부합하기에 진행한다는 뜻에서 가다는 뜻도 파생됐습니다. 반면 莫은 풀 사이로 해가 저물어가는 형상을 딴 글자로 모(暮)와 뜻이 같았습니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해가 없어지기에 ‘없다’는 뜻으로 고착됐고 부정적 의미에서 ‘불가하다’는 뜻도 갖게 됐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無適無莫은 ‘적합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로 봐야 합니다. 반드시 누군가가 되어야 하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집착하는 것이 適입니다. 반대로 누군가가 되어선 안 되고, 뭔가를 해서도 안 된다고 고집하는 것이 莫인 것입니다.


군자는 무적무막을 실천하는 사람이란 내용은 ‘공자는 4가지를 끊어냈으니 멋대로 생각하지 않았고(毋意), 함부로 단정하지 않았고(毋必), 고집부리지 않았고(毋固), 사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毋我)’(9편 ‘자한’ 제4장)와 공명합니다. 이중에서도 무필무고(毋必毋固)가 무적무막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를 흠모해 마지않던 조선시대 사대부의 행태를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사대부들은 “아니되옵니다, 전하”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의리와 명분에 부합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임금에게 도끼까지 들이대며 “이대로 안 할 거면 내 목을 치시옵소서”라고 상소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시비비를 따짐에 있어선 무적무막과 무필무고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을 어떻게 그렇게 일상다반사로 벌일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의지여비(義之與比)라는 구절의 해석 때문입니다. 주자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비(比)를 ‘따르다’는 뜻으로 해석해 “오로지 의로움을 따를 뿐이다”로 풀이합니다. 의로움이 판단의 절대적 잣대나 저울이 됨을 강조한 해석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세상만사에 다 의로움의 잣대를 대거나 의로움의 저울로 재는 게 가능할까요? 공자의 발언이 과연 누가 더 의로운지, 무엇이 더 의로운 행동인지를 하나하나 판단해 시시비비를 가리라는 걸까요? 공자가 과연 의로움을 절대 기준으로 삼으라는 취지에서 무적무막의 이야기를 꺼낸 걸까요?


오히려 공자가 말하고자 한 바는 모든 것을 옳고 그름의 척도로 재단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것으로 읽힙니다. 다만 정말 혼란스러울 때에 한해 “그 사람은 의로운 사람인가?” 또는 “그 행동이 의로움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딱 부러지는 답이 나오는 경우에만 시시비비를 가리라는 조언 아닐까요? 평소엔 무적무막과 무필무고에 입각해 상황에 맞는 선택과 판단을 하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이 될 때에 한해 의로움의 척도 꺼내 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공자가 생각하는 의로움의 척도는 맹자나 주자와 같은 후학들이 생각한 것과 달리 그 눈금이 촘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안을 의로움의 척도로 재려면 그 눈금이 촘촘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중대사를 판단할 때에만 꺼내드는 척도의 눈금은 성길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보직에 누군가를 발탁할 때 맹자와 주자가 생각하는 의로움의 척도는 영혼의 무게까지 잴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공자가 생각하는 의로움의 척도는 의롭다와 의롭지 않다 2개의 눈금 사이 여백이 큽니다. 그래서 딱히 의롭지 않다에 걸리지 않는 한 크게 문제 삼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지여비(義之與比)의 비(比)를 ‘따르다’가 아니라 ‘견주다’, ‘재다’는 의미로 풀었습니다. ‘의로움을 절대적 척로 삼으라’는 뜻이 아니라 ‘의로운지 아닌지 정도만 살펴보라’는 뜻으로 축소 해석한 것입니다.


이는 “군자는 주이불비(周而不比)하고 소인은 비이부주(比而不周)하다”(2편 ‘위정’ 제14장 )는 공자의 가르침과 연계됩니다. 여러 갈래로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이 장과 관련해서 “군자는 사람을 널리 포용하고 함부로 비교하지 않지만 소인은 사람을 비교하기 바빠 포용하지 못한다”로 풀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비교하고 재는 일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의로움의 척도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합니다. 따라서 의로움의 척도를 꺼내드는 순간이 오더라도 딱 부러지게 갈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누가 또는 무엇이 더 의로운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자제돼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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