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명성에 대한 혁명적 발상

4편 이인(里仁) 제5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부유함과 고귀함, 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머물지 않는다. 가난함과 비천함, 이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날 수 없다면 떠나지 않는다. 군자가 어짊을 떠나면 어디서 명성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 한 끼 먹는 짧은 시간도 어짊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급박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그러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그러하다.”


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자왈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득지 불처야 빈여천 시인지소오야 불이기도득지 불거야

君子去仁, 惡乎成名?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군자거인 오호성명 군자무종식지간위인 조차필어시 전패필어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귀영화(富貴榮華)와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바랍니다. 군자건 소인이건 차이가 없습니다. 공자는 그 팔복 중에서도 유독 부귀(富貴)와 그 대척점에 선 빈천(貧賤)에 주목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복은 운의 역할이 크더라도 부귀와 빈천만큼은 그래서 안 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원문의 ‘그 도(其道)’에 있습니다. 부귀를 얻는 것도 빈천에서 벗어나는 것도 그에 걸맞은 도에 부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다수의 주석서는 이를 ‘정당한 방식’이라고만 풀이하고는 뭉개고 넘어갑니다. 부귀를 누리고 빈천을 벗어나는 데 있어 그 도에 부합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함의하는 게 무얼까요?

고대사회에서 부귀와 빈천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는 권력이었습니다. 당시 부의 결정적 원천인 토지가 권력에 의해 분배됐습니다. 주나라의 봉건제는 왕이 제후에게 봉지를 하사하고 제후가 다시 경대부에게 자신의 봉지를 쪼개 나눠주는 것을 근간으로 삼습니다. 부귀와 빈천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는 결국 그의 신분이 대인이냐 소인이냐에 따라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군자학은 대인이 혈통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치평의 도와 수제의 덕을 갈고닦은 군자만이 대인이 될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잘 만났다고 권력을 상속받고 그에 수반되는 부귀를 누리는 것은 그 도에 어긋나는 부당한 것입니다. 군자로 훈련된 리더가 국가공동체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대인이 돼 빈천에서 벗어나 부귀를 누리는 것이 그 도에 부합하는 정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장의 앞 구절은 매우 혁명적이고 위험한 내용을 품고 있습니다. 지도자 자격이 없는 놈들이 나랏일을 한답시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거들먹거리는 것 자체가 무도(無道)한 것이라는 체제비판의 메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치적 함의를 외면하다 보니 군자는 부귀비천에 초연하다는 식의 도가적 해석이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공자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부귀명성은 권력에만 좌우되지 않습니다. 저마다 그것을 결정하는 ‘그 도’가 따로 있다고 할 정도로 분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공자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저마다 그 도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귀명성은 물론 권력까지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문제는 그 모든 것이 권력이 아니라 부에 의해 결정되는 데 있습니다. 돈만 많으면 귀하고 유명하고 권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경향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부를 축적하는 것이 장땡이라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하지만 부를 축적하는데도 도가 작동합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거나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다른 경쟁자를 함정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축적한 부는 그 도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재계를 이끄는 지도자 역시 군자에 해당한다고 봤을 때 군자지도에 벗어나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재계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똑같이 무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뒷 구절에서는 갑자기 어짊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별개의 장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군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도가 어짊을 구성하는 양대 요소라는 점에서 아예 어색하다고 못 밖을 순 없습니다. 부귀와 빈천을 가르는 도에 부합한 삶을 사는 것 역시 어짊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뒷 구절은 ‘조차전패(造次顚沛)’라는 사자성어를 낳았습니다. 조차(造次)는 찰나 조(造)와 순간 차(次)의 합성어로 ‘찰나의 순간’이란 뜻과 ‘급박한 상황’이란 뜻을 함께 갖게 됐습니다. 전패(顚沛)는 엎어질 전(顚) 자빠질 패(沛)의 합성어로 엎어지고 자빠지는 상황, 곧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뜻합니다. 둘을 합친 조차전패는 곧 위기일발과 다르지 않습니다.

뒷 구절은 ‘군자는 위기일발의 순간에도 어짊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정당한 명성을 누릴 수 있다’로 요약됩니다. 이것이 ‘군자는 도에 부합하지 않으면 부귀도 멀리하고 빈천도 품는다’는 앞구절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걸까요? 공자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이를 해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는 인의 구성요소입니다. 도에 부합한 삶을 사는 것은 어짊과 연결됩니다. 도에 부합하지 않으면 부귀에 머물지(處) 않고 빈천을 박차고 나오지(去) 않는 것이 군자지도(君子之道)이기에 당연히 어진 삶으로 이어집니다. 앞서 부귀에 대해 언급했으니 다음으로 명성에 대한 언급이 나와야 합니다. 정당한 명성을 얻고 싶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도에 부합하는 어진 삶에서 한시라도 벗어나지(去)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빈천한 상황 못지않게 위기일발의 상황에서도 어짊의 원칙에서 벗어나지(違) 않는 삶을 살 때 정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다로 연결된 것입니다.

keyword
펭소아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32
매거진의 이전글어진 것과 어질지 못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