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이인(里仁) 제3장 & 제4장
공자가 말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또 싫어할 수 있다.”
子曰: “惟仁者, 能好人, 能惡人.”
자왈 유인자 능호인 능오인
공자가 말했다. “진실로 어짊에 뜻을 둔다면 악이란 것이 없게 된다.”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자왈 구지어인의 무악야
제목에 어질 인(仁)이 들어간 ‘이인’ 편에는 어짊에 대한 공자의 다양한 발언이 폭죽처럼 터집니다. 그중에서 3장과 4장은 惡이란 한자어가 공통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함께 살펴봐야 그 뜻을 더 깊게 음미할 수 있습니다.
3장의 惡은 ‘싫을 오’로 새기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좋아할 호(好)와 나란히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장의 惡은 ‘싫을 오’와 ‘나쁠 악’ 2가지 해석이 둘 다 가능합니다.
‘싫을 오’로 풀어내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진 사람은 사심이 없기에 진정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진정으로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진실로 어질어지고자 한다면 싫음은 사라질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모순이지만 그를 통해 어짊이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디서 문학적 해석입니다.
‘나쁠 악’으로 풀어내는 것은 3장과 4장의 이런 논리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함입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사심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가능하다. 진실로 어질어지고자 한다면 잘못은 저지를지언정 사악한 짓은 안 하게 된다.” 이는 주자가 좋아하는 도덕주의적 해석입니다. 아니면 마지막 문장만 “진실로 어질어지고자 한다면 나쁠 게 하나도 없다”로 효용론에 입각해 풀어내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둘 다 탐탁지 않은 해석입니다. 3장과 4장을 모두 ‘싫을 오’로 풀어내게 되면 어질지 못한 것을 보고도 싫어하는 것은 충분히 어질지 않기 때문이라는 엉뚱한 해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공자는 앞서 살펴본 이인 편 제6장에서 “어짊을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어질지 못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면서 어질지 못한 것을 싫어하라고 주문한 사람이니 앞뒤 안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4장을 ‘어짊에 뜻을 두면 미움받지 않게 된다’로 푸는 주석서도 있습니다. 사람이 어질어지면 어질지 못한 것을 싫어하되 그 자신은 미움을 받을 일이 없어진다는 절충적 해석입니다. 이 역시 좋은 정치란 착한 사람은 좋아하고 못된 사람은 싫어하는 것이 돼야 한다(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는 공자의 발언(13편 ‘자로’ 제24장)과 배치됩니다. 어진 사람은 ‘미움받을 용기’를 갖춘 사람이며 어진 정치는 잘잘못을 분명히 따질 줄 아는 정치라는 점에서 그냥 착한 정치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쁠 악’으로 풀어낼 수밖엔 없습니다. 하지만 “일체의 사악함이 사라진다”는 도덕주의적 해석은 닭살이 돋을 정도로 진부합니다. 또 “나쁠 게 없다”는 공리주의적 해석은 뭐든 손익을 따지는 소인의 화법이라는 점에서 얄팍합니다. 그래서 “악이라는 것이 없어진다”로 풀어봤습니다. 어짊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선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않게 되고 절대적 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취지입니다. 어질지 못한 사람을 싫어는 하되 그를 구제불능의 악인으로 못 박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해석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