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이인(里仁) 제2장
공자가 말했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곤궁함을 오래 견딜 수 없고, 안락함을 길게 누리지 못한다. 어진 사람은 어짊을 편안하게 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어짊을 이롭게 한다.”
子曰: “不仁者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
자왈 불인자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안인 지자리인
첫 구절에서 ‘구처약(久處約)’과 ‘장처락(長處樂)’이 멋진 대비를 이룹니다. 여기서 約은 가난하다, 곤궁하다는 뜻으로 쓰였고 반대로 樂은 안락하다,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곤궁한 상황에 처했을 때 오래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은 직관적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안락한 상황에 처해서도 이를 길게 만끽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의표를 찌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양화’ 편 제15장 내용을 함께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루한 사람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안달하고, 손에 넣으면 잃어버릴까 봐 근심한다. 진실로 잃어버릴까 근심한다면 못할 짓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비루한 사람(鄙夫)’은 대인의 지위에 있건만 소인의 욕망과 행동거지를 버리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 장에서 언급된 ‘어질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라던 것을 손에 넣어도 잃어버릴까 안달복달하기에 장처락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구처약보다 장처락을 하는 데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빈궁함을 견디는 구처약은 소인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가능합니다. 반면 안락함을 지속하는 장처락은 대인의 지위에 있는 사람도 벅찬 일입니다.
진짜 흥미로운 것은 어진 사람과 슬기로운 사람이 어짊에 대한 태도를 나란히 견줘 표현한 그다음 대목입니다. 얼핏 보면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슬기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즐겁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6편 ‘옹야’ 제23장)처럼 두 가지 덕목의 특징을 포착한 것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이 장에서 어짊과 슬기로움을 나란히 저울에 올려놓은 뒤 어짊의 무게가 더 나감을 미묘한 화법으로 보여줍니다.
대다수 주석서는 뒷 구절을 “어진 사람은 어짊을 편안히 여기고, 슬기로운 사람은 어짊을 이롭게 여긴다”라고 풀이합니다. 지나친 의역입니다. “어진 사람은 어짊을 편안하게 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어짊을 이롭게 한다”가 자연스럽습니다.
그 의미는 편안하게 함(安)을 장처락, 이롭게 함(利)을 구처약과 짝지어 줄 때 명확해집니다. 어짊을 편안하게 한다는 표현은 안락함을 지속시키는 장처락에 능하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 어짊을 이롭게 한다는 표현은 빈궁한 상황을 타개할 이로운 방법을 찾아내는데 능하다는 점에서 구처약에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뒷 구절을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진 사람과 슬기로운 사람은 모두 구처약과 장처락의 능력을 겸비했습니다. 다만 슬기로운 사람이 구처약에 더 밝다면 어진 사람은 장처락에 더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헌데 앞서 살펴봤듯이 구처약보다 장처락의 내공이 더 깊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진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보다 우위에 있게 되니 어짊이 슬기로움을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