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韶)’가 군자학 환상곡인 이유

3편 팔일(八佾) 제25장

by 펭소아

공자가 ‘소(韶)’에 대해 말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구나!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구나!" 또 ‘무(武)’애 대해 말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구나!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기엔 부족하구나!”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위무 진미의 미진선야



‘소(韶)’는 순임금이 직접 지었다는 전설의 곡입니다. 30대의 공자가 제나라 유학을 갔다가 처음 접하고 석 달간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심취하면서 “음악을 하는 것이 이런 경지에까지 이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평한 곡(7편 ‘술이’ 제13장)이기도 합니다.


공자가 편찬했을 가능성이 높은 ‘서경’은 이 곡이 아홉 차례 연주되자 봉황이 날아와 예를 갖췄다(簫韶九成 鳳凰來儀)는 전설을 전합니다. 봉황은 태평성대에만 출현하는 전설의 새이니 곧 태평성대의 이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란 소리입니다. ‘서경’에는 그 가사로 추정되는 내용도 등장합니다. 핵심은 첫째 천명(天命)에 부합하는 정치를 할 것이며 둘째 자질구레한 일은 신하에게 위임하고 임금은 현명해지기 위해 애쓰라는 것입니다.


‘무(武)’는 주나라 무왕의 공적을 찬양하는 노래로 역시 공자가 편찬한 ‘시경’에 그 가사가 수록돼 있습니다. 문덕 많은 문왕이 열어준 길을 따라 은나라를 물리쳐 폭군을 죽이고 폭정을 막았다는 내용입니다. ‘소’와 달리 무왕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그 신하들이 지어 받친 노래입니다.


두 곡을 비교하면서 미(美)와 선(善)이란 형용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美는 아름답다는 듯이고 선은 좋다는 뜻에서 착하다는 뜻이 파생됐습니다. 헌데 이를 음악작품에 적용할 때 둘의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본 유학자 오규 소라이는 두 한자에 모두 양(羊)이 들어간다는 차이에 초점을 맞춰 美는 음악의 큰 틀을 말하고 善은 작은 디테일을 말한다고 풀었습니다. 흥미로운 해석이긴 하지만 과녁을 적중시키는 해석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그보다 아름답다가 음악의 형식인 곡의 선율에 대한 평가라면 좋다는 가사 내용에 대한 평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공자의 평가에 따르면 ‘소’와 ‘무’의 선율은 둘 다 순정한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다만 ‘무’에 비해 ‘소’의 가사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소’가 ‘무’ 보다 더 좋은 것인지에 대한 임사가 이 장의 핵심입니다.


순임금은 요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았고 또 이를 다시 우임금에게 선양했습니다. 반면 주무왕은 역성혁명을 통해 왕위를 탈취했고 천자가 된 이후 이를 자신의 후손에게 대대손손 물려주도록 했습니다. 성리학은 이를 문덕(文德)과 무용(武勇)의 차이로 포착해 문이 무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로 풉니다.


‘무(武)’는 주나라 무왕의 공적을 찬양하는 노래로 역시 공자가 편찬한 ‘시경’에 그 가사가 수록돼 있습니다. 문덕 많은 문왕이 열어준 길을 따라 은나라를 물리쳐 폭군 주왕을 죽이고 폭정을 막았다는 내용입니다. ‘소’와 달리 무왕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그 신하들이 지어 받친 노래입니다.


두 곡을 비교하면서 미(美)와 선(善)이란 형용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美는 아름답다는 듯이고 선은 좋다는 뜻에서 착하다는 뜻이 파생됐습니다. 헌데 이를 음악작품에 적용할 때 둘의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본 유학자 오규 소라이는 두 한자에 모두 양(羊)이 들어간다는 차이에 초점을 맞춰 美는 음악의 큰 틀을 말하고 善은 작은 디테일을 말한다고 풀었습니다. 흥미로운 해석이긴 하지만 과녁을 적중시키는 해석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그보다 아름답다가 음악의 형식인 선율에 대한 평가라면 좋다는 가사 내용에 대한 평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공자의 평가에 따르면 ‘소’와 ‘무’의 선율은 둘 다 순정한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다만 ‘무’에 비해 ‘소’의 가사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소’가 ‘무’ 보다 더 좋은 것인지에 대한 임사가 이 장의 핵심입니다.


순임금은 요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았고 또 이를 다시 우임금에게 선양했습니다. 반면 주무왕은 역성혁명을 통해 왕위를 탈취한 이후 이를 자신의 후손에게 대대손손 물려주도록 했습니다. 성리학은 이를 문덕(文德)과 무용(武勇)의 차이로 포착해 문이 무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로 풀어냅니다.


단순히 문이 무보다 우위에 있음을 예시하려면 요임금이 지은 ‘대장(大章)’이란 곡도 있고 우임금이 지은 ‘하(夏)’라는 곡도 있습니다. 헌데 왜 그 가운데 위치한 순임금의 ‘소’를 들고 나왔을까요? 물론 공자가 제나라에서 ‘소’를 발굴한 반면 ‘대장’과 ‘하’는 당시에 이미 실전됐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 가운데 위치한 순임금의 ‘소’가 공자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를 생각하면 그 의미심장함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무왕은 자신의 아버지인 주문왕에게서 제후의 지위를 이어받아 결국 왕이 됐고 그 왕위를 다시 자신의 아들인 주성왕에게 물려줬습니다. 반면 순에게 왕위를 물려준 요는 그의 아비가 아니었고 그가 왕위를 물려준 우 역시 그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순임금이 삼가 받들어 모신 천명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임금의 옥좌는 혈통으로 계승되선 안되고 그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고 그렇게 왕이 된 사람은 신하들 중에서 유능하고 덕을 갖춘 사람을 골라 이를 물려줘야 한다.’ 군왕의 지위가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와 덕을 함께 갖춘 어진 사람에게 가야 한다는 군자학의 관점입니다. 원초적 공화주의자로서 공자의 혁명가적 면모를 다시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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