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팔일(八佾) 제16장
공자가 말했다. "활쏘기는 과녁의 가죽 뚫기를 주로 하지 않으니 사람마다 힘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옛날의 도다."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자왈 사부주피 위력부동과 고지도야
우리말 과녁은 한자어 관혁(貫革)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貫革은 가죽을 관통한다는 뜻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육예의 하나였던 활쏘기를 할 때는 두꺼운 베로 만든 과녁판 가운데에 동물의 형상을 한 가죽을 붙였습니다. 활을 쏘는 사람의 신분이 천자냐, 제후냐, 대부냐, 사냐에 따랴 그 가죽에 그려진 동물을 달리 했다고 합니다. 과녁판 가운데 동물이 그려진 가죽을 화살로 관통해야 비로소 과녁을 적중한 것이 된 것입니다.
공자는 이를 잘못이라 지적합니다. 옛날의 궁도(弓道)는 동물이 그려진 가죽을 꿰뚫는 힘보다 그 가죽을 맞추는 정확도가 활쏘기에선 더 중요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천추전국시대 전쟁이 많이 벌어지면서 활쏘기에서도 갑옷을 꿰뚫는 살상능력이 중시되는 것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조선시대 정조처럼 후대의 사대부들은 활쏘기를 군자의 스포츠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부(武夫)의 활쏘기와 달리 군자의 활쏘기는 힘이 아니라 정확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취지로 새겼습니다.
공자가 활쏘기에 국한해 이를 말한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비유적 의미가 강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한 걸까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바꾸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금언과 공명하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학문에서건 인생에서건 강하고 빠른 것보다 과연 무엇을 맞추느냐가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풀어서 말하면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에 집중해야지 그에 따른 부수적 피해 해소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앞서 곡삭의 의례가 형해화됐다면 희생양이 낭비되는 부수적인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의례의 원래 취지를 되살리거나 그게 안 되면 아예 의례 자체를 폐지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