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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02. 2023

세속적 정치와 초월적 정치

3편 팔일(八佾) 제13장

  왕손가가 물었다. "'아랫목에 아첨하느니 차라리 부뚜막에게 아첨하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데가 없습니다."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  녕미어조   하위야    자왈   불연  획죄어천   무소도야     



  왕손가는 공자가 직접 위나라의 3대 현신으로 꼽은 인물입니다. 외교에 중숙어(공어), 예법에 축타(사어), 국방에 왕손가가 있어서 위령공 같은 무도한 제후가 버틸 수 있었다고 계강자에게 설명하는 대목(14편 ‘헌문’ 제19장)입니다. ‘춘추좌전’에는 북방 강국인 진(晉)의 압박으로 위령공이 위신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왕손가가 배짱 있게 나서 위령공의 위신을 높여줘 끝내 진나라에 볼모를 보내야 하는 상황을 물리치게 됩니다.

    

  그렇게 공자의 인정을 받은 왕손가의 발언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의 발언 속 오(奧)는 는 집에서 가장 깊숙한 곳을 뜻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널리 알려진 ‘오오쿠(大奧)’는 도쿠가와막부 최고권력자(쇼군)의 첩실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뜻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구중궁궐의 가장 은밀한 곳 정도가 될 것입니다. 조(竈)는 아궁이 위에 솥을 걸어 놓는 언저리를 뜻하는 부뚜막을 말합니다. 조리와 실내 난방이 이뤄지는 핵심공간이지만 집의 중심부에선 멀리 떨어진 공간입니다.


  따라서 왕손가의 발언은 “권력의 최상부에 잘 보이기보다는 실무진에 잘 보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회유의 뜻으로 풀이됩니다. 많은 주석서는 위령공에게 잘 보이기보다 자신에게 잘 보여야 위나라에서 등용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풀이합니다. 그렇지만 오는 안방의 아랫목이란 점에서 위령공보다는 그 부인인 남자를 겨냥한 표현이 맞다고 봐야 합니다. 실제 공자는 위나라에 처음 머물 당시 위령공을 만난 뒤 그 부인인 남자(南子)를 독대한 바가 있습니다.

       

  왕손가의 발언은 세속적 처세술에 입각한 발언입니다. 잡힐지 말지 예측불가하는 동아줄을 기다리지 말고 자신과 같은 위나라의 실세의 구미에 맞게 처신하면서 차근차근 경상의 반열에 오를 길을 모색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응답은 그런 세속적 처세술을 뛰어넘는 고차원의 경지를 열어젖힙니다. 공자는 자신이 정치를 하려는 이유가 세속적 입신출세에 뜻이 있어서가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인 천명(天命)을 실현하기 위함에 있다는 취지의 답을 던집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데가 없다는 말을 꺼낸 것일까요?

    

  오와 조는 단순히 집안의 공간만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 머무는 무속신앙의 대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주희는 제후가 모시는 다섯 가지 제사를 뜻하는 오사(五祀)까지 들먹이지만 과도한 해석입니다. 그보다는 민간에서 집과 관련해 모시는 다섯 신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집의 신인 호신(戶神), 부엌신인 조신(竈神), 토지신인 중류신(中霤神), 대문을 지키는 문신(門神), 우물신인 정신(井神)입니다. 오가 호신이 머무는 공간이라면 조는 조신이 머무는 곳입니다. 한국 무속신앙에 비춰보면 오는 성주신, 조는 조왕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응답은 왕손가의 발언에 함축된 무속신앙의 속성과 자신의 천명의식의 차이를 선명한 구도로 대비시킨 것입니다. 이를 통해 왕손가의 세속성과 공자 자신의 초월성을 극명히 보여줌으로써 왕손가를 단숨에 침묵시켜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공자가 정치를 하려는 목표가 자신을 기용해 준 군주에게 보답하거나 충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자가 정치를 꿈꾼 이유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서, 또 옛 성현의 어진 정치를 지금 여기서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이 갈고닦은 군자학을 현실정치에 투영해 그 실효성을 검증받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따라서 감히 성주신이니 조왕신 같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이 아니라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예에 정통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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