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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04. 2023

제사에 임하는 공자의 마음가짐

3편 팔일(八佾) 제12장

  조상에게 제사드릴 때는 마치 조상이 거기 있는 듯, 신령에게 제사드릴 때는 마치 신령이 거기 있는 듯이 했다. 공자가 말했다. “나 자신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드리지 않은 것과 같다.”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제여재   제신여신재   자왈   오불여제   여부제


.          

  앞의 문구는 제사를 지낼 때 공자의 자세요, 뒤의 문구는 그에 대한 공자의 발언입니다. 북송의 정이는 원문의 祭如在를 조상에 대한 제사로, 祭神如神在는 조상 외의 천신(天神)이나 산신(山神) 같은 외신(外神)에게 지내는 제사로 풀었습니다. 따라서 전자를 모실 때는 효(孝), 후자를 모실 때는 경(敬)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오규 소라이는 고대부터 祭如在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었고 祭神如神在는 그 의미를 풀이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 또한 공자의 발언이 돼야 하기에 그 앞에 子曰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야 합니다. 따라서 정이의 해석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공자는 괴력난신에 대해서 말을 아꼈습니다. 또 귀신을 섬기는 것보다 산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중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귀신을 섬기는 제사에 임할 때는 지극 정성을 다했습니다. 이 장의 언행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사를 모실 때 귀신이 임한다고 믿은 것이 아니라 마치 귀신이 임한 듯 여겼다는 데 있습니다. 귀신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믿은 것이 아니란 소리입니다.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11편 ‘선진’ 제11장)의 자세 그대로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모셨을까요?  제사는 그가 속한 공동체가 합의한 지상의 척도로서 예(禮)의 주요 구성요소였습니다. 그렇기에 귀신의 실재 여부에 상관없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신성한 의무 이행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이때 공자에게 중요한 것은 귀신의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제사를 모시는 주체의 주관적 마음가짐입니다.  

    

  그 마음가짐은 정이의 분석처럼 효와 경으로 나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충(忠)과 타인에게 정성을 다하는 성(誠)이 합쳐진 마음가짐 아닐까 합니다. 제사가 모셔진 객관적 사실보다 내가 거기에 참여했냐는 주관적 사실이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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