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소아 Oct 09. 2023

손바닥 위에 천하를 올려놓는 자

3편 팔일(八佾) 제10장 & 제11장

  자가 말했다. “체(禘)에 있어서 강신주를 부은 이후의 것을 나는 보고 싶지 않다."     


  子曰: "禘, 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자왈   체   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  

   

  어떤 사람이 체(禘)라는 제사의 요체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모른다 그걸 아는 사람이 천하를 대하는 것은 아마도 그걸 여기에다 올려놓고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바닥을 가리켰다.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혹문체지설   자왈    부지야   지기설자지어천하야   기여시저사호    지기장     



  ‘팔일’ 편에는 제사에 대한 공자의 언급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체(禘)에 대한 발언 2개를 다룬 장을 하나로 묶어봤습니다. 禘는 고대 제왕이 왕조의 시조에게 드리는 큰제사를 뜻합니다. 하지만 구체적 제의의 내용은 후대에 유실됐습니다. 심지어 공자 당대에도 정확한 제례 절차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자가 살던 동주시대에 체는 두 갈래가 존재했습니다. 첫째는 주나라 왕이 모시는 것이고 둘째는 노나라 제후가 모시는 것입니다. 제왕만이 거행할 수 있던 제사를 어떻게 제후가 지내게 됐을까요? 노나라의 시조가 바로 주공 희단이기 때문입니다. 주나라 2대 왕 성왕(희송)이 자신이 어린 시절 섭정을 맡았던 삼촌 주공이 죽자 그를 제왕의 반열에 올려 노나라 공실에서 그 제사를 모실 때 체로 지내도록 한 것입니다.  

   

  문제는 노나라에서 모시는 체의 제례가 원형을 상실하고 엉망진창이 된 데 있었습니다. 모든 제사는 신을 부르는 영신(迎神), 그 신을 음식과 술로 대접하는 오신(娛神)과 신에게 기도하는 기신(祈神), 신을 보내는 송신(送神)으로 구성됩니다.    

  

  10장의 원문 속 관(灌)은 영신을 위한 의례로 신을 부르기 위해 향이 강한 강신주를 붓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강신주는 강황과 비슷한 생강과의 식물인 울금(鬱金)을 넣어 담가 황금빛을 띠고 향이 강한 울창주(鬱蒼酒)가 쓰였습니다. 한국의 종묘제례에선 울창주를 땅에 붓습니다. 고대 중국에선 울창주를 신위(神位) 대신 신이 빙의하도록 의자에 앉혀둔 어린아이인 시동(尸童)에게 부어 그 향을 들이켜게 했다고 합니다.   

  

  노나라의 체에 대해 공자가 인정한 것은 여기까지고 그 뒤의 제례는 공자가 보기에 목불인견의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그럼 체에 대한 선생님의 학설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원문의 체지설(禘之說)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說은 말씀, 설명, 이치, 제사 등 여러 뜻으로 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의 원형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공자의 가설 내지 학설을 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공자의 답이 “모른다”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게 됩니다. 가설 내지 학설에 대해 “모른다”라고 답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한문학자 시라카와 시즈키의 글자풀이에 따르면 說은 신에게 기도하던 무당이 신의 응답을 받아 신들린 순간을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거기서 ‘말씀 설’과 ‘기쁠 열’이란 뜻이 생기게 됐습니다. 신에게 올리는 제사라는 뜻도 그래서 파생됐을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체라는 제사가 어떤 원리에 따라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의 질문을 받고 공자가 그를 모른다고 답한 것으로 풀어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체라는 제사의 요체’로 풀어봤습니다.   

  

  공자는 그 요체를 모른다면서도 의미심장한 답을 덧붙입니다. 그걸 알게 된다면 세상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즉, 체의 요체를 알게 되면 천하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리학자들은 공자가 이미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하면서 자신이 터득한 그 높은 경지를 슬쩍 흘렸다는 해석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자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할 리도 없지만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할 사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자의 발언에는 다른 함의가 숨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게 뭘까요?     


  체의 요체를 아는 사람은 곧 제왕의 반열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체라는 제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공자 시대 노나라 제후뿐 아니라 제왕이었던 주나라 왕은 과연 그 요체를 알고 있었을까요? 그들도 몰랐기에 체가 개판 오 분 전으로 상황으로 플러가게 된 아니었던가요? 심지어 예에 정통한 공자도 몰랐습니다. 그럼 누가 알게 될까요? 새로운 왕조를 열어 체 제사의 요체를 새롭게 규정할 그 누군가입니다.  

    

  공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한 것은 체의 원형을 회복하자는 복고주의적 주장이 아닙니다. 반대로 미래의 왕조를 열어젖히는 사람이 그 체의 요체를 새롭게 확립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지향적 발언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왕가의 혈통 또는 제후의 혈통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 치국지도와 수신지덕을 양 날개로 삼는 군자학을 갈고닦은 사람 중의 한 명일 것이라는 암시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군자학을 터득해 천하만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 새로운 왕조의 시조로서 새로운 체의 체제를 만들게 될 것이란 말을 뒤집어서 표현한 것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제사에 임하는 공자의 마음가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