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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11. 2023

공자의 알리바이 연대기

3편 팔일(八佾) 제9장

  공자가 말했다. “하나라의 예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기나라가 그 증거가 되기엔 부족하다. 은나라의 예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 있지만 송나라가 그 증거가 되기엔 부족하다. 문헌이 부족한 까닭이다. 만일 충분하다면 내가 그것들을 증명할 수 있다.” 

    

  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자왈    하례오능언지   기부족징야   은례오능언지   송부족징야   문헌부족고야   족즉오능징지의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는 주나라의 제도와 예악을 정립한 주공(희단)을 시조로 삼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노나라의 예에 정통하면 주나라의 예에 정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나라 앞에 있었던 은나라와 하나라는 어떨까요?  

    

  주무왕은 은나라(은상)를 정복한 뒤 은상의 시조 탕왕(湯王)의 후예인 미자(微子‧자계)와 그 유민에게 송(宋) 나라를 봉분해 줬습니다. 또 하나라 시조 우왕(禹王)의 후예인 동루공(東樓公)과 그 일족에게 봉분한 제후국이 기(杞) 나라입니다. 둘 다 지금의 허난성에 위치합니다. 따라서 주나라와 노나라의 예처럼 하나라의 제도와 예약을 가장 잘 보존한 나라가 기나라가 됩니다. 또 은상의 제도와 예약을 가장 잘 계승한 나라가 송나라인 것입니다. 

     

  실제 ‘예기’에는 ‘하나라의 도를 살펴보기 위해 기나라에 가서 ‘하시(夏時)’라는 책을 얻었고 상나라(은상)의 도를 살펴보기 위해 송나라에 가서 ‘건곤(乾坤)’을 얻었다 ‘라는 공자의 발언이 나옵니다. 또  ‘중용’에는 ‘내가 하나라의 예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나 기나라가 그 증거가 되기에 부족하고, 내가 은나라의 예를 배웠으니 송나라에 그 예가 남아있어서다'라는 공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자는 고대의 예악을 배우기 위해 발품을 팔아가면서 꼼꼼히 조사를 한 것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원문의 문헌(文獻)에 대해서는 문(文)은 기록이요, 헌(獻)은 그에 정통한 현명한 사람(賢)이라 풀이하곤 합니다. 공자의 조사는 글자료만 찾은 것이 아니라 관련자들 인터뷰까지 병행하는 치밀한 조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자는 하와 은상의 예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다(吾能言)”고 합니다. 앞서 체(褅)에 대해선 “모른다(不知也)”고 단언했던 것과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체에 관해선 없어도 하와 은상의 예에 대해선 자신만의 학설을 갖췄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문제는 기나라와 송나라의 제도와 예악이 그 원형을 잃고 많이 변질되는 바람에 자신의 학설을 뒷받침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공자의 주장입니다.

     

  이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군자학에 대한 방어막을 친 것 아닐까 합니다. 하와 은상의 예에 대한 공자의 학설에 대해 기나라와 송나라 사람들이 “어?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데?”라며 반론을 제기할 경우 “어 그건 당신들이 전통이라고 믿는 게 오랜 세월을 거치며 바뀌어서 그런 것”이라는 방어논리를 펼치기 위한 포석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정답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되기에 기와 송의 전통과 공자의 학설은 등가의 지위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군자학을 구축한 전략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미래지향적 내용에 부합하는 내용을 고대에서 길어내는 것입니다.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군자학을 뒷받침할 내용을 찾아내 침소봉대도 불사했습니다. 또 이를 엄폐하고 미화하기 위해 온고지신과 술이부작이란 표현을 고안해 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의 내용 또한 ‘과거에 투사된 미래’라는 군자학의 정체를 감추고 보호하기 위한 알안전장치의 일환으로 고안해낸 일종의 '알리바이 연대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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