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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30. 2023

알맹이 없는 껍데기는 가라

3편 팔일(八佾) 제3장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예가 무슨 소용이며?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자왈    인이불인   여례하   인이불인   여악하           



  많은 주석서가 어짊이 내용이고 예악이 그 형식이 돼야 한다는 뜻으로 이를 새깁니다. 성리학자들은 한 술 더 떠 먼저 어진 사람이 되고 나서 예악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논리적으론 명쾌합니다. 하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어짊(仁)은 군자가 지향하는 최고 가치지만 그를 성취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공자조차  “거룩함과 어짊을 내 감히 어찌 바라겠는가?”(若聖與仁, 則吾豈敢·7편 ‘술이’ 제33장)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천하의 공자도 이루지 못한 경지를 이루고 나서 예악을 행하라는 말은 아예 예악을 행하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사람은 일반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악을 실행하는 주체이니 곧 공경대부에 해당하는 대인(大人)을 말합니다. 대인의 지위에 있는데 어진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예악을 행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정치비판의 메시지가 담긴 것입니다.  

    

  또 여기서 불인(不仁)은 어짊에 이르지 못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진 정치와 정반대 되는 정치를 펼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어진 정치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런 정치를 펼치려 노력하는 경우는 배제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이 장은 개인적 인성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정치적 비판의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합니다. 어진 정치를 펼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정치인들이 거창하게 예악을 행하겠다고 설치는 꼴을 질타한 것입니다. 당대의 공경대부가 예악의 밑바탕을 이룬 어진 정치에 대한 열망 없이 그저 겉치레에만 치중하는 것을 비판한 이 발언은 현대 정치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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