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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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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Nov 12. 2023

운칠기삼과 공칠과삼의 역설

-2023년 2월 25일

두 가지 사자성어는 비슷해보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정반대의 효과를 창출한다. 흔히들 운칠기삼(運七技三)은 냉소적인 표현이고 공칠과삼(功七過三)은 객관적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표현을 썼을 때 효과는 정반대라는 것이 우민의 생각이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운칠기삼이 먼저다. 17세기 청나라때 이야기꾼 포송령이 쓴 책으로 영화 '천녀유혼'의 원작 설화가 수록된 '요재지이'에 처음 등장한다.

수없이 과거시험을 봤지만 낙방거사를 면치 못했던 포송령 자신의 인생이 투영된 늙은 선비가 옥황상제를 찾아가 그 불공폄함을 따진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 두 신을 불러다놓고 술대결을 시킨다. 

정의의 신은 3잔을 마시고 쓰러진다. 운명의 신은 7잔을 마시며 승리한다. 옥황상제는 운명의 신이 힘이 더 센 것을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3할의 정의가 없다면 성공이 완성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공칠과삼은 이 운칠기삼의 변형으로 추정되는데 저작권이 중국 공산당 지도자인 모택동에게 있다. 세계 공산주의자 최고 지도자였던 스탈린이 죽자 그가 세운 공이 70%요 저지른 잘못이 30%라며 들고 나온 표현이다. 그 표현이 정작 유명해진 것은 모택동 자신이 죽은 뒤 그 계승자를 자처했던 등소평이 다시 모택동에게 적용하면서부터다.

사실 공칠과삼은 '객관의 탈'을 쓴 채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주관적 독선의 표현이다. 과연 세계인 중에 스탈린과 모택동을 공칠과삼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고 우민은 묻고 싶다. 현재 공산국가의 기득권 세력이 된 공산당원 내지 과거 스탈린주의라는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를 맹종했던 자칭 '양심수'를 제외하면 코웃음칠 판단 아닐까?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면서 수많은 인민을 학살한 독재자에게 가당치 않은 표현 아니겠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에서 공칠과삼이란 표현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자타공인 반공주의자인 경우를 우민은 수없이 목도한다.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한국의 우익 반공지도자를 옹호하면서 그들이 질색했던 공산주의자들이 애용한 그 표현을 훔쳐다 쓰다니 그들의 논리가 얼마나 옹색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 아니겠는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이승만과 박정희가 좌우만 바뀌었지 스탈린이나 모택동과 다를 바 없는 독재자 성향의 지도자이기 때문 아닐가?. 운이 더럽게 좋았거나 동지들의 등에 칼을 꽂는 권모술수에 능해 최고 권좌에 앉은 주제에 자기가 잘 나고 똑똑해서 그 자리에 앉은 줄 착각하고 벽에 똥칠할 때까지 버티려다 폭망한 사람들 아니던가.  '내가 이 자리에 앉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니들이 알아?'라는 아집의 화신들라서 본인을 망치고 나라를 망쳤음에도 여전히 그들을 영웅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빚어내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반대로 많은 이들이 냉소적 표현이라 생각하는 운칠기삼을 최고 권력자에게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상상해보자고 우민은 제안한다.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 그 자리에 앉게 됐다고 그들이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매사에 겸손하고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 운이 좋아 얻은 것이니 자기만 쥐고 있지 말고 주변에 널리 나눠주자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 결과 국민을 섬기고 베푸는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능력주의의 환상에 빠진 한국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널리 퍼뜨려야 할 표현은 '공칠과삼'이 아니라 '운칠기삼'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이미 한자리 차지한 사람들이 과오를 저지를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공칠과삼'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개소리'라는 꼬리표를 달아 역사의 무덤 속에 파묻어버려야 한다고 우민은 강력히 주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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