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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 또는 망각 된 공자의 현실비판

2편 위정(爲政) 제24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제사할 대상이 아닌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 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자왈 비기귀이제지 첨야 견의불위 무용야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2가지 문장이 하나로 엮여 있습니다. 앞 문장은 엉뚱한 귀신에게까지 제사를 지니는 문제를 다루니 예(禮)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뒷 문장은 말할 것도 없이 의(義)와 관련됩니다.


그 둘을 연결시키는 해석은 다양합니다. 전자는 개인적 윤리를 다뤘고 후자는 공리적 윤리를 다뤘다고 해석하거나 전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뤘고 후자는 해야 할 것을 다뤘다고 풀이합니다.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 왠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존재는 바로 '논어' 안에서 발견됩니다. 노나라 집정대부 계강자입니다. 예와 관련한 앞 문장은 태산에 올리는 산신제는 본디 천자 아니면 노나라 제후만이 올릴 수 있었거늘 대부인 계강자가 이를 강행한 것(3편 ‘팔일’ 제6장)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의와 관련한 뒷 문장은 제나라의 대부인 진성자(진항)가 주군인 제간공을 시해하자 그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야 한다는 공자의 주청을 계강자를 비롯한 삼환세력이 모두 묵살한 것(14편 ‘헌문’ 제21장)에 대한 비판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둘을 종합하면 계강자는 하지 말아야 할 제사를 지내 귀산에게 아부하고, 반드시 행동으로 옮겼어야 하는 의로움을 외면한 겁쟁이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비판한 셈입니다. 그러나 계손 씨 가문은 공자 당대는 물론 공자가 죽고 난 뒤에도 상당기간 노나라를 쥐락펴락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이름을 직접 거명할 수 없어 에둘러 암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이런 매서운 현실 비판 정신은 노나라에서 공문의 간판을 이어가며 도덕심성론에 치중했던 자여(증자)-자사-맹자 계열의 노학(魯學)에 의해 은폐되거나 망각됐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해석이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협유(俠儒)의 길을 걸었던 자장(子張) 학파가 분서갱유 때 살아남았다면 그 구구한 억측들을 단칼에 쳐내지 않았을까,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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