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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Nov 12. 2023

은폐 또는 망각된 공자의 현실비판

2편 위정(爲政) 제24장

  공자가 말했다. “제사할 대상이 아닌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 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자왈    비기귀이제지   첨야  견의불위  무용야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2가지 문장이 하나로 엮여 있습니다. 앞 문장은 엉뚱한 귀신에게까지 제사를 지니는 문제를 다루니 예(禮)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뒷 문장은 말할 것도 없이 의(義)와 관련됩니다.    

  

  그 둘을 연결시키는 해석은 다양합니다. 전자는 개인적 윤리를 다뤘고 후자는 공리적 윤리를 다뤘다고 해석하거나 전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뤘고 후자는 해야 할 것을 다뤘다고 풀이합니다.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 왠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존재는 바로 '논어' 안에서 발견됩니다. 노나라 집정대부 계강자입니다. 예와 관련한 앞 문장은 태산에 올리는 산신제는 본디 천자 아니면 노나라 제후만이 올릴 수 있었거늘 대부인 계강자가 이를 강행한 것(3편 ‘팔일’ 제6장)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의와 관련한 뒷 문장은 제나라의 대부인 진성자(진항)가 주군인 제간공을 시해하자 그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야 한다는 공자의 주청을 계강자를 비롯한 삼환세력이 모두 묵살한 것(14편 ‘헌문’ 제21장)에 대한 비판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둘을 종합하면 계강자는 하지 말아야 할 제사를 지내 귀산에게 아부하고, 반드시 행동으로 옮겼어야 하는 의로움을 외면한 겁쟁이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비판한 셈입니다. 그러나 계손 씨 가문은 공자 당대는 물론 공자가 죽고 난 뒤에도 상당기간 노나라를 쥐락펴락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이름을 직접 거명할 수 없어 에둘러 암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이런 매서운 현실 비판 정신은 노나라에서 공문의 간판을 이어가며 도덕심성론에 치중했던 자여(증자)-자사-맹자 계열의 노학(魯學)에 의해 은폐되거나 망각됐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해석이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협유(俠儒)의 길을 걸었던 자장(子張) 학파가 분서갱유 때 살아남았다면 그 구구한 억측들을 단칼에 쳐내지 않았을까,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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