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소아 Nov 30. 2023

자로와 제비

2편 위정(爲政) 제17장

  공자가 말씀했다. “중유야! 너에게 아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줄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앎은 분별하는 것입니다. 앎의 대상을 어떤 범주에 넣고 어떻게 분류할지 판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안다고 합니다. 공자는 이를 앎과 모름에 대한 메타인지에까지 적용합니다.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분류하고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많은 주석서는 이런 인지론을 윤리적으로 풀이합니다.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지식인이 전국시대 들어 중용되면서 푸코가 말한 ‘지식의 권력화’가 맹렬하게 전개됩니다. 그러면서 잘 모르면서도 다 아는 척 하는 지적 사기도 횡행하게 됩니다. 이는 유학과 국가권력의 결탁이 공공해지는 한나라 이후 전방위로 확산됩니다. 이때부터 삼강오륜과 사서삼경이 정치권력 획득에 주요 수단이 되면서 진실로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위군자 전성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위군자를 공자의 이 발언에 빗대 풍자하는 만담까지 등장합니다.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어떤 위군자가 마구 잘난 척하고 있는데 마침 지붕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위군자의 장광설을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자네 저 제비가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지지위지지요, 부지위부지라’고 하지 않은가”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비가 지저귐을  ‘지지배배’로 표현하는 것에 공자의 발언을 녹여 상대를 무색하게 만든 것입니다.  

    

  후대의 성리학자들은 자로(중유)가 모르는 것을 자꾸 아는 것처럼 구는 것을 보고 공자가 이를 경계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들 해석합니다. 자로를 위군자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로는 누구보다 올곧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아는 걸 고집할 순 있을지언정 결코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할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장의 내용은 앎이 부족하다고 주눅이 든 자로에 대한 격려성 발언으로 봐야 합니다. “자로야, 너는 사람이 우직해 아는 것과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지 않느냐? 그게 진정 아는 것이니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 없느니라!” 

     

  공자 시대에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했을 것입니다. 특히 예 전문가를 자처했던 유자(儒者)들 사이에서 ‘감 놔라 배 놔라’ 식의 논쟁이 많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공자가 노나라 태묘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이게 예에 부합하느냐고 하나하나 물었다는 것도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해법일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전거를 들어가면서 “제가 알기엔 이것이 예에 부합하는데 맞는지요?”라고 묻게 되면 알던 이는 대접받는 기분이 들 것이요, 모르던 이는 아는 척하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그렇게 아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하나하나 묻는 것이 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말합니다. 둘을 종합하면 알아도 짐짓 모르는 척하는 것이 예라면 아는 것은 안다고 하는 게 앎(知)이라는 차이가 발생합니다. 지자(知者)는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지만 인자(仁者)는 앎뿐 아니라 예에도 능통하기에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것이니 역시 앎보다 어짊이 한 수 위라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주의자였던 자장은 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