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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Dec 25. 2023

효의 핵심은 공경 아니라 경애

2편 위정(爲政) 제7장 & 제8장

  자유가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오늘날의 효란 단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개와 말을 키울 때도 다 하는 바이니 경애하지 않는다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자하가 효도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것이 어렵다. 일이 있으면 어린 사람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연장자가 잡숫게 하는 것, 어찌 이를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문효   자왈   색난   유사  제자복기로   유주사  선생찬   증시이위효호     


  

  ‘위정’ 편에는 효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합니다. 자 계열의 제자로 연배가 엇비슷한 자유와 자하에게 언급한 내용은 궤를 같이 합니다. 물질적 봉양보다는 경애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유에게는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능양(能養)은 가축을 기르는 데도 적용되니 경애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맹자’ 진심 상 제37장에 나오는 ‘먹이기만 하고 아끼지 않으면 돼지로 사귀는 것이고 아끼기만 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食而弗愛, 豕交之也. 愛而不敬, 獸畜之也)’는 그 가르침을 푼 것이가고 할 수 있습니다.   

  

  자하에게는 힘쓸 일 있을 때 젊은이가 대신 나서고, 먹을 게 있을 때 연장자부터 권하는 것을 효라 할 수 없고 부모를 대할 때 경애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한 효라고 강조합니다. 원문의 색난(色難)을 두고 두 갈래 해석이 있습니다. 옛 주석은 부모의 표정을 보고 그 뜻을 헤아리는 것이 어렵다로 새겼지만 주희는 자식이 부모를 대할 때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고 새겼습니다.      


  여기선 주희의 해석을 택했습니다. 그 근거가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예기(禮記)’ 24편 ‘제의(祭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부모를 아끼는 마음이 깊은 효자는 반드시 화평한 기운이 있고, 화평한 기운이 있는 자는 반드시 낯빛이 밝고, 밝은 낯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용모가 상냥하다. 효자는 옥을 손에 쥔 듯하고, 물이 가득 찬 그릇을 받들 듯하니, 융숭 깊고 삼가는 자세를 갖추나니, 감당하지 못할 듯하고, 곧 놓칠 듯하나니 위엄과 엄숙은 어버이를 섬기는 바가 아니다(孝子之有深愛者 必有和氣, 有和氣者 必有愉色, 有愉色者, 必有婉容. 孝子如執玉, 如奉盈, 洞洞屬屬然, 如弗勝, 如將失之, 嚴威儼恪非所以事親也).’     


  ‘제의’ 편 원문 속 동동(洞洞)은 질박하고 진실한 자세를 뜻하고 촉촉(屬屬)은 일관되게 삼가는 자세를 뜻합니다. 고을 동(洞)은 본디 깊은 골짜기를 뜻하니 ‘속이 융숭 깊다’로 풀었고, 이을 촉(屬)에는 조심한다, 공경하다의 뜻이 있어 ‘삼가다’로 풀었습니다. 그를 합친 동동촉촉(洞洞屬屬)을 보통 공손히 받들어 모시는 공경(恭敬)으로 새깁니다. 하지만 ‘제의’ 편의 내용을 음미해 보면 지극한 사랑이 깔려 있으면서 엄숙함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경애(敬愛)가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공자가 효의 핵심가치로 말한 경(敬)의 본질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은 본디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두려워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후대의 유학자들이 공경으로 새긴 뜻입니다. 하지만 ‘예기’에 따르면 부모에 대한 경은 깊은 사랑(深愛)에서 나온 화평한 가운(平氣), 밝은 표정(愉色), 상냥한 용모(婉容)이자 융숭 깊고 삼가는 자세(洞洞屬屬然)를 말합니다. 깨뜨릴까 조심스럽고, 쏟을까 아슬아슬한 마음이 깃들었으니 위엄과 엄숙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공경보다는 경애가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옥을 쥔 듯, 가득 찬 그릇 받들 듯(執玉奉盈)’이라는 시적인 표현에 담긴 애틋한 마음입니다. 지극히 아끼기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자하에게 가르침을 주는 대목을 보면 제자(弟子)와 선생(先生)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를 두고 공자가 말하는 효가 가족윤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 연장자와 젊은이에도 확대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문맥상 그 반대가 맞습니다. 공자의 발언에 따르면 스승과 제자, 연장자와 젊은이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는 것은 효라고 할 수 없고 경애하는 마음과 온화한 표정을 갖춰야 비로소 효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자유에겐 효의 근본 심성으로 경애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면 자하에겐 그 외적 표출로서 온화한 표정을 갖추라 가르침을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자유는 부모를 잘 모신다고 하지만 경애하는 마음이 살짝 부족했을 수 있고 자하는 공손하긴 한데 부모를 대함에 있어 경직된 표정과 자세를 보였을 수 있습니다. 경애와 온화한 표정의 이런 관계는 어짊(仁)과 예(禮)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으니 이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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