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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Dec 30. 2023

공자의 자찬묘비명

2편 위정(爲政) 제4장

  공자가 말했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뒀고, 서른 살에 홀로 서게 됐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게 됐고,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헤아리게 됐으며,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됐다.” 

    

  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어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자신의 평생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이렇게 짧게 응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특히 과시할만한 업적이나 직함은 쏙 빼고 담담한 내적 평가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특히 후대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비춰볼 거울로 삼게 했다는 점에서 자찬 묘비명의 천하명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지학(志學)에 해당하는 열다섯을 대표하는 표현은 ‘중이병’입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사춘기 청소년이 보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대변합니다. 공자는 그 나이에 평생 학문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세웠습니다. 나중에 뭐가 되겠다가 아니라 평생 무엇을 할 것인지를 목표로 세웠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스물도 한참 지나 서른이 됐을 때 입(立)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해석이 가장 분분한 대목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서게 됐다”입니다. 혹자는 8편 ‘태백’ 제8장에 나오는 “시로써 일어나고, 예로써 서며, 악으로써 이룬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의 표현을 연상해 “예에 대한 공부로 일가를 이뤘다”는 뜻으로 풉니다. 그러나 공자의 학문이 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편협한 해석입니다. 학문에 뜻을 두고 15년을 공부한 끝에 홀로 설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마흔과 쉰을 지칭하는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은 가장 자주 인구에 회자됩니다만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으로 쓸 때가 많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미혹에 빠지는 일은 마흔을 넘어서도 되풀이되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하늘의 뜻을 안다는 것은 도통한 사람이 아니고선 함부로 뱉을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평소 겸손하기로 유명한 공자는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미혹됨이 없다는 것은 지학과 연관해 학문의 영역에서 삿된 주장에 말려들지 않게 됐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합니다. 지천명 또한 도통했다는 뜻보다는 당대가 필요로 하는 시대정신을 깨닫고 거기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뭣인지를 자각하게 됐다는 뜻 아닐까 합니다. 공자에게 그것은 자신이 갈고닦은 군자학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이루기 위해 노나라 조정에 진출해 5년 그리고 자신을 기용해 줄 제후를 찾아 13년, 그렇게 18년에 걸쳐 펼친 분투는 무산됐으니 천명을 잘못 안 것일까요? 아닙니다. 공자가 사문(斯文)이라고 말한 그 천명은 그의 사후 온 천하에 퍼지게 됐으니 제대로 천명을 알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순에 해당하는 이순(耳順)은 다른 사람의 날 선 비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게 됐다는 뜻입니다. 실제 육순이 되면 귀가 어두워지는데 다른 사람의 험담을 덜 듣게 하려는 하늘의 배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귀가 어두워진 사람들이 자신이 이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걸 자주 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노년이 될수록 다른 사람의 비판과 잔소리를 못 견뎌 성내고 삐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순의 핵심은 비판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자는 주유천하 시기 풍찬노숙의 서러움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연연하지 않게 됐습니다. 위나라와 정나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광(匡) 땅에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늘이 장차 사문(斯文)을 소멸할 거라면 나중에 죽는 사람은 사문과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외쳤던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이순은 육체적 노쇠 대신 정신적 성숙이 이뤄졌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나이 들어 귀가 어두워졌다고 다 이순이 아닌 것입니다. 

         

  종심(從心)으로 줄여 표현되는 칠순의 경지야말로 도통한 모습에 가깝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말하고 행하는 것이 천하의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원문의 구(矩)는 목수가 쓰는 직각을 이루는 자를 말합니다. 반원형으로 생긴 각도기 규(規)와 함께 기준, 법규, 법도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유(踰)는 ‘넘는다’이니 불유구(不踰矩)는 법규와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자의 자찬묘지명은 이미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둔 사람도 도달하기 벅찬 경지가 담겨 있습니다. 헌데 학문에 뜻을 두기는커녕 책 읽기도 멀리하는 현대인들이 나이만 먹었다고 공자의 경지에 자신을 비견하는 것이야말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열두 살 나이에 이미 자신의 꿈이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라며 학문에 몰두한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 정도가 아니라면 엄두를 내서도 안됩니다. 학업보단 생업에 뜻을 둔 분들을 위한 인생의 바로미터는 따로 있을 터이니 그를 거울삼으시라고 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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