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학이(學而) 제16장
공자가 말했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자왈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안다’에는 참 여러 가지 뜻이 함축돼 있습니다. 히브리성경(구약)에서는 남녀가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것을 ‘안다’로 표현합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상황과 관련해 공자가 말하는 ‘안다’는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세계사적 맥락에서 인간투쟁을 인정투쟁으로 규정한 헤겔과 이를 이어받아 인정욕망을 윤리학의 기초로 삼은 악셀 호네트의 사상과 궤를 같이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헤겔․호네트의 인정욕망이 적극적인 투쟁으로 표출된다면 반해 공자의 인정욕망은 우회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전자는 남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현상을 타파하고 그 인정을 쟁취해야 한다는 적극성과 진취성이 강조됩니다. 후자는 남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아파하고 성내지 말라는 식의 소극성과 내향성이 엿보입니다. 예수가 말한 서양 황금률(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과 공자의 ‘기소물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의 차이와 닮았습니다.
2500년 전 공자의 시대는 18세기 철학자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투쟁이 벌어지는 시대였습니다. 봉건제의 최정점에 있던 왕과 대부의 관계조차도 주노 관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신하의 생사여탈권을 왕이 쥐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헤겔과 호네트가 말하는 인정욕망과 인정투쟁을 거침없이 진술할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부정적 형태 아니면 소극적 형태로 우회 진술한 것입니다.
대신 되풀이해 진술함으로써 인정욕망이 좌절되는 것이 상처와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환기시킨 것입니다. 실제 ‘논어’에는 인정욕망이 좌절된 상황에 대한 언급이 여섯 차례나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주석서는 이렇게 되풀이되는 공자 발언 속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이란 조건절(protasis)이 아니라 그에 대한 대응을 담은 귀결절(apodosis)에만 주목합니다. 예를 들어 14편 ‘헌문’ 제30장의 발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에게 그만한 능력이 없는 것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와 이 장은 형식이 거의 같은데 결론 부분만 살짝 다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 대한 조건절적 상황에 대한 공자의 집착입니다. 그것이 강박적으로 되풀이된다는 것은 실제 공자가 그런 상황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이었다는 반증입니다. 다시 말해 공자는 매우 강렬한 인정욕망을 지녔던 것입니다. 다만 당대에 그것을 인정투쟁 형식으로 풀어내는데 한계가 있었기에 자기계발 내지 자기승화의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왕조시대의 인간관계는 타고난 신분에 의해 서열이 규정됩니다. 인문주의자였던 공자는 이러한 불평등한 인간관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타고난 혈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의 불합리성을 타파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통치학(도)과 인간학(덕)을 갈고닦은 지도자감(군자)에게 왕위를 선양하는 공화주의 정치사상으로서 군자학이었습니다.
이를 최고 통치자인 왕과 그의 조력자인 신하의 관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군주가 신하를 부릴 때는 예의를 갖춰야 하고, 신하가 군주를 섬길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3편 ‘팔일’ 제19장)”에서 보듯 상호인정의 형식으로 이뤄집니다.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그를 임금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하기에 가능하듯 임금이 신하에게 예를 갖추는 것 역시 그를 신하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호네트의 인정투쟁론에 따르면 인정투쟁으로서 도덕투쟁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 상태는 ‘훼손 없는 상호주관성’이 실현된 상태입니다. 즉 내가 너를 인정하듯 너도 나를 인정하는 상호인정이 평화적으로 구현된 상태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장의 귀결절인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먼저 걱정하라’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섭니다. 내가 인정받고자 한다면 먼저 남을 인정하라는 상호주관성의 통찰이 번뜩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