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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Jan 17. 2024

‘시경놀이’의 진실

1편 학이(學而) 제15장

  자공이 말했다. “가난해도 아첨치 아니하고, 부유해도 교만치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괜찮다. 하지만 가난해도 즐겁고,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는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자른 듯 간듯하고, 쫀 듯 연마한 듯하다’라고 한 것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로군요!" 

  공자가 말했다. “단목사야, 비로소 너와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지난 것을 일러줬더니 올 것을 아는구나.”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자공왈    시운    여절여차  여탁여마   기사지위여  

  子曰: "賜也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왈    사야시가여언시이의    고저왕이지래자          



  공자 제자 중 엄지와 검지에 해당하는 안연과 자공을 떠올리면서 읽게 되는 텍스트입니다. ‘가난해도 아첨치 않는다(貧而無諂)’와 ‘가난해도 즐겁다(貧而樂)’는 안빈낙도의 화신이었던 안연을 떠올리게 합니다. ‘부유해도 교만치 않는다(富而無驕)’와 ‘부유해도 예를 좋아한다(富而好禮)’는 자신의 노력으로 큰 부를 일구는 자공을 연상케 합니다. 또 자공이 공자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대목은 안연이 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면 자신은 하나를 듣고 둘을 알 뿐이라 한 자공의 발언((4편 ‘공야장’ 제9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부이무교(富而無驕)’는 14편 ‘헌문’ 제10장에선 공자의 발언 속에 등장합니다. “가난하게 살면서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어렵지 부유하게 살면서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오히려 쉽다(貧而無怨, 難. 富而無驕, 易)”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빈이무첨(貧而無諂)이 부이무교(富而無驕)보다 어렵고, 빈이락(貧而樂)이 부이호례(富而好禮)보다 어렵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공이 인용한 ‘시경’ 구절은 위풍 편에 실린 ‘기욱(淇奧)’이라는 노래가사의 일부입니다. 위나라를 가로지르던 기수(淇水)는 그 물굽이(奧) 안쪽에 무성하게 자라는 푸른 대나무가 유명해 기원(淇園)이라는 원림까지 조성됩니다. 위나라의 멋쟁이 공자(公子)를 그 대나무에 비견하며 찬미한 노래가 기욱입니다. 자공이 읊은 대목은 3연으로 이뤄진 기욱의 1연 가사의 일부입니다. 기욱 1연은 ‘대학’에 고스란히 등장하는데 군자가 학문과 인격을 갈고닦는 자세를 찬미한 시로 풀이되면서 훗날 고사성어 절차탁마(切磋琢磨)가 생겨납니다. 

    

  절차탁마에 대해 옥기(玉器)를 만드는 네 가지 공정이란 주석이 많이 보입니다. 와전된 것입니다. 절차(切磋)는 뼈나 상아를 가공하는 공정이고, 탁마(琢磨)는 옥이나 보석을 가공하는 공정입니다. 뼈와 상아를 가공하려면 먼저 그 일부를 잘라내야 하고 이어 윤택이 나도록 표면을 대패로 갈아야 합니다. 또 옥이나 보석은 원석에서 잡석을 제거하기 위해 먼저 끌로 쪼아야 하고 남은 부위를 반질반질하게 숫돌로 연마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절(切)과 차(磋)가 한 쌍이 되고, 탁(琢)과 마(摩)가 한 쌍이 되는 것입니다. 자공의 깨달음인 빈이무첨과 부이무교가 절과 탁이고, 공자의 가르침인 빈이락과 부이호례가 차와 마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전자가 하나요, 후자가 둘인 것입니다.     


  위나라 출신인 자공이 위나라 노래인 기욱의 가사를 떠올리고선 공자의 가르침을 재치 있게 받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스승님 보세요, 하나를 가르쳐 주시면 제가 이렇게 둘을 알지 않습니까?’ 자공의 깨달음이 살짝 부족하다 느꼈던 공자는 그 순간 자공이 전법제자가 되기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같은 위나라 출신인 자하가 위풍 ‘석인’ 을 인용했을 때 했던 “비로소 함께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구나”라는 말을 꺼내듭니다. 잠깐, 자공과 자하가 시경의 시를 원용해 발언한 것이  왜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게 한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공자학단이 시경의 시를 갖고 펼친 놀이의 실체를 비로소 간파하게 됩니다. 실제 기욱은 봄날 기수 강변에 놀러 온 여인네가 잘생긴 남성의 조각같은 외모를 흠모하며 부른 사랑노래입니다. 가사 속 군자(君子)라는 표현도 귀한 집 도련님이란 호칭에 가깝습니다. 공자와 제자들이 이를 몰랐던 게 아닙니다. 알면서도 그 관능적 표현에 더 복잡 미묘한 의미 부여를 통해 그 텍스트를 심오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게임을 펼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자가 강조한 술이부작의 화법과 온고지신의 통찰을 키우는 연습이었던 것입니다. "나의 도는 일이관지한다"는 공자 발언의 진가는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면 공자가 남긴 마지막 발언의 의미가 새롭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섭니다. ‘지나난 것’은 단순히 빈이락과 부이호례의 가르침만을 말한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술이부작의 술이, 온고지신의 온고에 해당하니 이미 기술된 것, 익히 알려진 것에 대한 중의적 표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올 것’ 또한 학문과 인격 수양의 길이 끊임이 없다는 도덕적 가르침에만 머무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술이부작의 부작이자 온고지신의 지신에 해당하는 것이니 이미 주어진 텍스트에 참신한 의미 부여하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는 뜻까지 함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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