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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Feb 20. 2024

증자가 공자의 불량복제품 된 이유

1편 학이(學而) 제4장

  증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내 처신을 세 차례 돌아본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않았는가? 벗을 사귐에 있어 미덥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만 할 뿐 스스로 익히지는 않았는가?”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유교는 공자 한 사람의 사상으로만 구축된 것이 아닙니다. 공자의 제자들, 그중에서도 자여(증자)-자사-맹자로 이어지는 수제파의 영향도 지대했습니다. ‘논어’에서 이는 증자의 발언으로 거듭 확인됩니다. 그는 줄기차게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충서(忠恕), 신종추원(愼終追遠) 같은 내면적 덕성 함양을 주창합니다. 

     

  덕성 함얌에 대한 공자와 자여의 발언에는 상당한 뉘앙스 차이가 존재합니다. 공자에게선 충(忠)이 가장 중요하니 스스로의 양심에 충실한 것입니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의 마음인 서(恕)는 그다음입니다. 공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이치인 도를 터득하는 것이고 그를 터득하려면 학문을 닦아야 하니 그 주체가 되는 나의 결단이 선행해야 합니다. 그러한 나의 깨우침을 토대로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덕의 중요함을 깨닫고 그를 수양하기 위한 분투를 펼치게 됩니다.  

    

  반면 자여의 경우는 아버지와 임금, 어른, 친구와 같은 타자가 먼저입니다. 忠보다 恕가 먼저인 것입니다. 세 가지 돌아봄(三省)의 첫 번째에 불충(不忠)이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는 취지라는 점에서 역시 恕의 종속변수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는 친구에 대한 것이니 역시 내가 아닌 남 중심의 윤리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일반적 타자를 겨냥한 언급이라면 두 번째는 그런 타자 중에서도 긴밀한 존재로 좁혀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비로소 자의식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그 자의식 역시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끼여 있는 중간적 존재로서 자신에 대한 의식이라는 점에서 역시 타자지향의 성찰입니다. 스승에게 전수받은 내용을 제자에게 기계적으로 전수하고 스스로 익히는 것을 게을리한다면 스승과 제자라는 또 다른 타자에게 죄를 짓는 것이란 죄의식입니다.   

   

  삼성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성(一省)은 전반적 타자와 관계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하루 누군가 남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가? 이성(二省)은 그 타자의 범위를 나와 친한 존재로 좁혀 살펴봅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미덥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마지막으로 삼성(三省)은 그 타자를 시계열에 위치시킨 성찰입니다. 과거의 스승과 미래의 제자 사이에 위치한 현재의 자신이 그들 앞에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느냐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 시계열을 자신의 근원이 되는 부모와 조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곧 신종추원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공자와 자여 사이에서 기묘한 도착이 발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주체적 결단을 통해 범애친인(汎愛親仁)의 실천을 자신과 후학의 사명으로 삼습니다. 아(我)에서 출발해 비아(非我)를 섬기겠다는 윤리적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반면 자여에게 그것은 자신의 주체적 결단이 아니라 절대적 진리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타자(스승)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이때 자여가 취한 윤리적 태도는 주체적 결단이 아닙니다. 무조건적 승복과 복종입니다. 아(我)를 지우고 비아(非我)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텅 빈 주체의 자리를 스승을 대신할 부모/임금/친구와 같은 또 다른 타자가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도착현상은 이후 공자말씀을 절대적 교시로 내면화하려 한 유교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공자가 그러한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고뇌와 주체적 결단은 무시되거나 생략된 채 타자를 섬기라는 그의 가르침만이 절대명령이 됩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로 그렇게 타자는 절대적 존재가 되어 나를 억압합니다.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토를 다는 것은 사문난적이란 이름의 사상범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공자의 실체에 대해선 알지도 못한 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즉물적 반응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 사상의 DNA는 자여를 거쳐 복제되는 과정에서 중차대한 손실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후대의 유학자들이 아와 비아의 변증법이 작동한 공자의 사유방식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를 지우고 비아만 절대화한 자여의 사유방식만 무한복제하면서 퇴행의 길을 걷게 된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학자가 공자를 성현으로 떠받든 자여를 모방하기 바빴다면 군자학자는 인간 공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자처럼 생각하고 공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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