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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Feb 26. 2024

유학의 근본 vs. 군자학의 근본

1편 학이 제2장

  유자가 말했다.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윗사람 범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드물다. 윗사람 범하는 것을 안 좋아하면서도 난 일으키기 좋아하는 자는 있어 본 적이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공경은 어짊을 행하는 근본이다.” 

    

  有子曰: “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유자왈    기위인야효제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이호작란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유약과 자여(증자)는 노나라 출신으로 수제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학풍을 노학(魯學)이라 일컫고 수제파라고 칭합니다. 유약은 여기서도 노학과 수제파의 일원다운 주장을 펼칩니다. 가족윤리인 효제(孝弟‧孝悌)에 충실한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서열질서에 투철해 범상작난(犯上作亂)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자 역시 범상작난을 싫어했습니다. 그 자신 늘 윗사람을 공경하는 자세를 견지했고 젊은이들에게 이를 강조했습니다. 또 어질지 못해 미움받게 된 사람이나 용맹함을 좋아하는데 가난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난을 일으키는 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8편 ‘태백’ 제10장).   

   

  하지만 상명하복의 서열질서에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윗사람에게 잘못이 있을 때는 대차게 들이받으라 했고(14편 ‘헌문’ 제22장), 윗사람을 충성으로 모신다면 윗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걸 일깨워줘야 한다고 했습니다(14편 ‘헌문’ 제7장). 공자에게 충은 윗사람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유약의 전반부 발언은 공자 가르침을 절반만 수용한 셈입니다. 그렇게 공자 가르침에 대해 ‘악마의 편집’을 가한 것이 양심에 찔렸던 걸까요? 앞에선 어눌한 논리를 펼다 갑자기 ‘본립도생(本立道生)’이란 현란한 표현까지 써가며 논리적 비약을 감행합니다. 도를 터득하려면 근본에 힘써야 하는데 효제야말로 어짊을 실천하는 근본이라는 논리를 펼칩니다. 한마디로 어짊의 근본이 효제의 실천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효는 부모를 섬기는 마음가짐이니 수직적 위계질서를 내면화한 것이요, 제는 형제간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니 수평적 관계에서 상호존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효제하는 사람은 범상작난 하지 않는다는 유약의 전제를 음미해 보면 여기서 제는 형(윗사람)을 복종하고 따르는 동생(아랫사람)의 마음자세로 풀어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앞서 1편 ‘학이’ 제6장에서 살펴봤듯이 공자는 어짊을 터득하기 위해선 효제근신(孝悌謹信)과 범애친인(汎愛親仁)을 거쳐 학문(學文)에 이르는 삼종세트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부모형제와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적용되는 수제의 마음가짐과 천하의 백성과 참된 지도자감 같은 공적 존재를 대하는 치평의 자세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문리를 터득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유약과 자여와 같은 근본주의자들에겐 그 셋도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로 단순화시키려 합니다. 그것이 자여에게 충서(忠恕)라면 유약에게는 효제(孝悌)인 것입니다. 충서와 효제는 수제의 덕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이미 공자의 직계 제자들부터 군자학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으로서 도와 덕을 덕으로 단일화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가 죽고 근 100년 뒤 태어난 맹자에 의해 도와 덕의 합일이 이뤄진 군자학의 최고 가치인 어짊(仁)마저 인의예지라는 네 가지 덕목 중 하나로 전락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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