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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누가 피렌체 공화정을 무너뜨렸나?

2025년 1월 25일(맑고 온화)

by 펭소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1년 퇴임하면서 전쟁을 통해 돈을 버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험을 경고하는 연설을 했다. 며칠 전 퇴임한 바이든 대통령이 그 전통을 이어 받아 '기술산업복합체(tech industrial complex)'의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다. 실리콘밸리의 신흥부자들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미국의 새로운 과두제(oligarchy)를 형성하려하고 있다고.


우민은 20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취임식에서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IT 신흥부자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바이든의 경고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음을 절감했다. 대중은 저커버그가 베조스의 새 아내 가슴팍 훔쳐보는 것을 조롱하는 정도에서 멈췄다. 하지만 우민은 기술산업복합체를 상징하는 그들이 미국 정치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한 것에 전율을 느꼈다.


공화주의는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결국 부패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군주제가 타락하면 전제정, 귀족제가 타락하면 과두정, 민주정이 타락하면 중우정치가 되기에 그 셋을 뒤섞어 견제와 보완이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제와 상원, 하원의 분리 운용이 바로 그 산물이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3권 분립은 오히려 근대 이후 추가된 것이다.


재벌공화국인 한국의 오랜 격언이 있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돈은 영원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견제되지 않는 권력으로서 재벌의 특수성과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라고 우민은 새긴다.


재벌 총수 자체는 악한 사람이 아니다. 재벌시스템이 그들을 부패한 괴물로 만든다. 큰 돈을 벌기 시작하면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수가 없다. 계속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어느새 '문어발 경영'과 '노동자 착취'의 화신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스스로 괴물이 됐음을 자각하면서도 '돈을 벌어야 나의 지위와 권력이 유지된다'는 강박이 더 강렬해 그걸 멈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성민 송중기 주연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교훈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 우민의 생각이다.


재벌이 보유한 엄청난 자본은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와 같다. 그걸 손에 쥐고 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부패한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게 돼 있다. 그걸 억제하는 것이 시장의 자정작용이라는 것인데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와 같은 반시장적 논리가 횡행하면 그들이 사우론이 되는 것을 억제할 길이 없게 된다.


대통령제는 그런 재벌시스템의 쌍둥이와 같다. 왕과 같이 군림하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이 곧 대통령이고 재벌회장이다. 책임정치와 책임경영의 예외적 존재, 그래서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사람을 허용하는 이 지점에서 '자의적 지배에 반대'하는 공화주의 정신의 타락이 발생한다.


로마 공화정이 왜 무너졌는가? 카이사르라는 예외적인 영웅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피렌체 공화정은 왜 군주정으로 바뀌었나? 엄청난 자본력을 지닌 메디치 가문에 온갖 특권을 허용하다 결국 공화주의 정신 자체를 망실했기 때문이다. 공화정 시대 유능한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가 사실상 메디치 왕정시대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해 취업 보고서로 '군주론'을 집필했지만 결국 고급 룸펜으로 썪어야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는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카이사르의 영웅적 면모, 메디치가의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 숨은 이런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공화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이소노미아(isonomia‧법 앞의 평등)가 무너지고 '자의적 지배에 반대'하는 공화주의 정신도 질식하게 된다. 머스크와 베조스, 저커버그의 눈분신 성공에 취하는 순간 당신은 공화주의의 대의를 배신하고 망각하는 자가 되고 만다. 가장 오래된 근대공화정 국가인 미국이 저렇게 타락해가듯이.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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