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우민일기

한국 노인세대의 암울한 초상

2025년 6월 1일(맑고 후덥지근한 초여름 날씨)

by 펭소아

오월의 마지막 날 지하철 5호선에서 불을 지른 방화범이 60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지난 4월 봉천동 아파트 방화범도 60대 남성이었다. 2008년 발생한 숭례문 화재사건의 범인도 당시 60대의 남성이었다. 공공장소에 불을 지른 사람들이 환갑을 넘긴 남성들이라는 것을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 있을까.


유교권에서 나이 육십은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순리에 맞게 받아들인다 하여 이순(耳順)이라 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순을 넘긴 노인들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얼토당토 않은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민의 생각은 환갑 넘은 방화범이야말로 한국 노인세대의 암울한 초상 아닐까로 달려갔다.


한국이라고 왜 생각이 제대로 여문 어른스러운 노인이 없겠는가? 지금은 고인이 된 채현국 선생이나 김장하 선생처럼 존경스러운 어른도 분명 계시다. 문제는 노인세대의 상당수가 독재도 나쁘지 않다며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윤석열 찬가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무모하다는 데 있다. 유교문화권에서 자라 나이가 들면 당연히 어르신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유아적 의식과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분탕질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것과 무관할까?


60대의 폭주는 보수적 인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 동지였던 사람의 아내를 "서울대 나온 남편 잘 만나 엄청 출세한 고졸" 출신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한 86 운동권 출신 지식인도 60대다. 진보 진영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지식인 대접을 받는 그는 20여년 전 "60세가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자기실현적 예언까지 남겼으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하긴 다른 세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나 자격지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정치의 세대 교체를 이끌 것이라는 40대 정치인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생방송 TV토론에 꺼내놓고도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세상이니까.


그렇기에 더욱 매년 나이를 먹는 것을 훈장이 아니라 인생의 무게로 받아들이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터이니"라는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우민부터 가슴 깊이 새겨본다.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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