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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26. 2020

우리시대의 브루투스, 김재규

우민일기(2020년 10월 26일)

    

오늘은 속된 말로 ‘탕탕절’이다. 1979년 김재규 장군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부를 쐈다”고 한 바로 그 날이다. 그로 인해 18년간 대한민국을 철권통치하던 박통이 불귀의 객이 됐고 한때 그의 혁명동지였고 최측근 중 하나였던 김재규 장군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국인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까? 1980년 ‘서울의 봄’을 몰고 오며 1987년 민주화의 씨앗을 뿌린 날이자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영도자라고 떠받드는 박통이 비운의 죽음을 맞은 날로 기억하지 않을까.     


우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초 번역돼 나온 한스 바론의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기(1955)’를 읽고 생각이 확 바뀌었다. 독일계 유대인으로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망명한 바론은 부르크하르트 이래 ‘개인의 발견’이란 예술운동으로만 생각하는 르네상스가 공화주의적 이상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정치투쟁이었음을 환기시킨 역사학자다. 그는 15세기 전후의 초기 르네상스 지식인들의 담론 투쟁에서 카이사르와 브루투스 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가 왜 중요했는지를 일깨워준다. 바로 카이사르로 대표되는 영웅적 군주를 추종할 것인지, 브루투스로 대표되는 비범할 것도 없지만 공화주의 원칙에 투철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사실 우민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카이사르와 브루투스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에 코웃음을 쳤다. 알렉산더,  나폴레옹, 칭기즈칸과 비견된 불세출의 영웅과 전제정을 막기 위해 자신을 총애하던 그 영웅을 암살한 사람의 무게가 어찌 비교가 될까. 하지만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당시 이는 ‘카이사르-밀라노-제국주의-왕당파’ vs ‘브루투스-피렌체-민주주의-공화파’의 대결이었다.     


우민은 카이사르와 브루투스를 제외하곤 모두 후자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두 인물을 놓고 비교할 때는 항상 더 영웅적인 카이사르의 손을 들어왔다. 그런데 바론의 책을 읽고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영웅주의에 물들어 판단 착오를 일으켜왔음을. 단순히 인물의 비중을 놓고 보면 당연히 카이사르는 브루투스를 능가하는 영웅이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우민은 또한 당연히 브루투스의 선택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처럼 영웅주의에 심취한 왕당파는 길길이 날뛰겠지만 역사에서 뭔가를 제대로 배운 공화파라면 당연히 기원전 44년의 그 순간 카이사르가 되기보다는 브루투스가 되는 길을 택할 것이다. 공화주의자라면 마땅히 진시황 보다는 그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던 형가가 영웅이며 제국주의 일본의 설계자였던 이토 히로부미 보다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며 그를 암살한 안중근이 영웅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한들 민주주의의 목을 조르던 박통이 아니라 법정 최후 진술에서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라고 외쳤던 김재규가 영웅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선 이념좌표를 설정할 때 자유(우파)와 평등(좌파) 2개 만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는 18세기 이후 생성된 지극히 경제결정론적 시각일 뿐이다. 인류 역사에서 그 전에는 정치결정론이 더 중요했으며 이는 곧 영웅주의와 공화주의의 대결로 귀결됐다. 


영웅주의는 카이사르나 박정희 같은 탁월한 영웅이 등장해 국가를 이끄는 것이 안전과 질서를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진짜 보수주의의 원류로 프랑스혁명 이후 왕당파로 불리는 이들이다. 반대로 공화주의자들은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 한 사람의 자의적 지배를 받는 것보다 평범한 인민의 공동통치를 우위에 두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역사의 소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점점 그 수가 많아졌으나 아직도 인류의 과반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우민은 평등파와 자유파를 x축으로 삼고 영웅파와 공화파를 y축으로 삼는 이념  좌표도를 구상했다. 평등파는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이고 자유파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중시한다. 영웅파는 대중과 차별화되는 탁월한 1인 통치를 통한 부국강병 노선을 선호한다. 그들에겐 안전과 질서가 가장 중요하다. 공화파는 자의적 권력의 등장을 가장 경계하기에 평범한 다수의 통치를 지지한다. 그들에겐 어떤 식으로든 지배받지 않을 자유와 독립성이 중요하다.     


왜 이런 좌표도가 필요한가? 20세기 이후 한국사회에선 평등파와 자유파의 대결만 부각된 탓에 정작 영웅파와 공화파의 대립은 은폐돼 왔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일본의 제국주의와 북한의 전체주의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평등파냐 자유파냐를 따지기 전에 먼저 공화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유파라고 주장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영웅파에 가깝다. 그들은 한국에서 대통령이 돼야 할 씨는 따로 있다고 생각해 매번 대통령의 출신지나 사상문제로 정통성 문제를 걸고넘어진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는 왕당파적 발상이다.     


당신이 공화파라면 그들의 정통성은 오로지 투표를 통해서만 확보되며 그 통치 행위가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계속 존중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그냥 ‘평범한 우리들 중에서 믿음직하고 설득력 있어서 우리들의 대표로 선출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음’ 을 인정해야 한다. 공화파가 진실로 경계하는 것은 그렇게 선출된 지도자가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자의적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집권 기간을 연장하려는 것이다.      


우민은 자신의 수첩에 그린 이념좌표의 4분면 위에 역사적 지도자들의 위치를 적어봤다. 자, 당신은 과연 저 4분면 중에 어디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래도 여전히 박정희를 김재규 보다 우위에 놓을 것인가?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 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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