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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Nov 15. 2020

지식인의 진짜 진짜 책무

우민일기(2020년 11월 11일)

우민은 최근 논란이 된 '지식인의 진짜 책무'라는 칼럼을 읽으며 장탄식을 뱉었다. 사람들은 가정폭력을 미화하고 부모님을 욕보인 대목에 주로 분노한다. 우민은 그 대목 못지않게 책 꾀나 읽었다는 사람의 지식인관이 겨우 저 정도인가에 놀랐다.


허생전에서 허생의 처는 "책 읽는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며 10년간 생계활동을 작폐하고 책만 읽던 허생을 다그친다. 그 바가지를 견디지 못한 허생은 결국 7년 만에 책을 덮고 돈벌이에 나서 백만장자가 된다. 사람들은 허생의 야심 찬 독서계획이 무너진 것은 기억 못 하고 허생이 매점매석으로 떼돈 번거만 기억한다. 만일 허생의 독서가 10년을 채웠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우민 생각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허생 처의 논리로 똘똘 무장한 채 책 읽기를 작폐했다. 1년에 한 권의 책도 안 읽는 사람이 70%나 된다. 그러면서 여말선초 이래 입신출세를 위해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집단 무의식이 낳은 죄책감을 회피하려고 ‘책 보기를 돌 같이 하라’를 지상명제로 삼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가져온 논리가 '먹물론'이다. 괜히 책만 많이 읽은 놈들이 나라를 망치고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논리다. 이건 순전히 한국사회에서만 먹히는 헛소리다. 여말선초 이후 한국 지식인의 자격은 과거급제를 통해 획득됐다. 국가권력의 총애를 받아야 지식인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지식인의 전통은 국가권력과 종교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지식인을 뜻한다. 한마디로 우파 박종홍이나 좌파 유시민 같은 어용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다. 


국가권력에서 독립된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염려, 배려다. 그걸 포기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책 읽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김민식 PD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의 논리 아니었던가? MBC가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장으로 기용하든 말든 그에 맞는 뉴스만 보도하든 말든 딴따라 PD가 자기 수양은 안 하고 왜 왈가왈부하고 나서느냐는 그런 논리 말이다.


김민식 류의 지식인관은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에서 나왔다. 치국평천하하기 전에 먼저 수신제가하라. 공공의 일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인간부터 되라는 주장이다. 천만에 만만에 콩떡 같은 소리다. 인간이 되는 일은 3년 수행, 10년 수행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평생에 걸쳐 추구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반면 공동체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관여하는 것은 그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뒤로 미뤄서 될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 다독가들의 진짜 문제는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를 하나로 묶어내는 사상을 벼려내려 한 헛된 야망에 있다. 그러한 실천의 산물이 종교이고 소크라테스가 창안한 철학이란 특수한 형태의 종교다. 하지만 이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하나로 묶으려 한 초끈이론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땐 그 둘을 분리해 대응하라는 것이 프래그머티즘이다. 


수신제가의 측면에서 지식인은 겸손해야 한다. 세상만사 유아독존의 행태를 보여선 안된다. 반면 치국평천하 측면에서 지식인은 도발적이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고대 아테네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기억해보라. 아테네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지적 도덕적 열등감을 일깨우는 짜증 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소가 끊임없이 꼬리 쳐서 쫓아야 했던 등에에 비유했다.


한국사회에 더 필요한 지식인은 수제학 측면의 도덕군자가 아니라 치평학 측면에서 등에와 같은 존재다. 책을 읽지 않으려 하고,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도발하고 자극하는 존재다. 김민식 PD의 아버지 열등감을 폭발하게 한 그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그게 책 읽기를 포기한 이 시대 지식의 진짜 진짜 책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 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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