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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25. 2020

진중권 현상에 대하여

우민일기(2020년 10월 15일)


  2020년 한국사회는 코로나19만큼 무서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진중권 바이러스’다. 한국 언론사에서 이처럼 한 개인의 발언이 무차별적으로 인용된 적이 또 있을까. 소셜미디어를 통한 개인 발언뿐만이 아니다. 올드미디어를 대표하는 신문과 잡지에 동시다발적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어쩌면 그 강력한 라이벌은 오히려 담론 공간에서 사실상 퇴출된 뒤 과거 그가 남긴 어록으로 더 많이 회자되는 조국 전 법무장관 아닐까?     


  이런 진중권 현상에 대한 반응은 얼핏 둘로 나눠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 무차별적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진중권에 꽂힌 사람들과 진중권을 진보세력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다. 전자에겐 ‘진중권 신드롬’이요 후자에겐 ‘진중권 포비아’ 일지 모르겠다. 우민은 여기서 2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그 둘은 반진중권 세력과 친진중권 세력에서 각각 발견된다.     


  첫째로 반진중권 세력에서 진중권을 비판하는 방식이 놀랍게도 과거 한국 보수세력이 진보인사를 비판하던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한국 보수 세력이 과거 유시민 같은 진보 지식인을 비판할 때 동원했던 게 “맞는 말도 참 싸가지 없게 한다”였다. ‘진보 싸가지론’이라는 건데 메시지를 반박하기 어려울 때 메신저의 인간성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반진중권 세력이 들고 나온 게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느냐’이다. 삼국지에 잠시 잠깐 등장하는 예형까지 거론한 집권여당의 상근 부대인은 민주화운동의 원로들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일본 유학한 토착 왜구 운운한 조정래 작가가 들고 나온 것도 ‘무례’였다. “(진 전 교수가) 사실 확인도 없이 경박하게 두 가지의 무례와 불경을 저질렀다. 광기라고 하는데, 작가 선배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대통령 딸까지 끌어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우민은 반진중권 세력의 이런 행태야말로 현 집권세력이 철저한 기득권 세력이 됐다는 진중권의 비판이 유효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 그들이 그렇게 비판했던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의 전가의 보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휘두르고 있는 것 아닌가. 바로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떼거리로 공격하면서 “먼저 인간이 돼라”를 외치는 것이다.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두 번째 현상은 친진중권 세력에서 발견되는데 이게 더 흥미롭다. 친진중권 세력 중 상당수는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반문재인 세력이 대거 포함돼 있다. 과거 이들은 진중권에 대해서 현재의 반진중권 세력이 펼치고 있던 공격을 똑같이 펼쳤다. 그런데 ‘꿩 잡는데 매가 최고’라고 진중권을 통해 문재인 정부 까는 재미에 빠져있다.     


  우민이 보기에 이야말로 진중권의 프레임에 한국의 보수우파가 부지불식간에 말려든 것이다. 보수우파는 과거 진중권이란 메신저를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공격하느라 정작 진중권이 펼쳐놓는 메시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다. 그러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를 차지게 비판한다고 박수치면서 점점 더 진중권이 펼쳐놓은 진보담론의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 사상의 좌클릭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한국사회의 전반적 좌클릭이다. 진중권이 펼쳐놓은 프레임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국민의힘은 극우고, 민주당이 리버럴, 정의당이 찐진보다. 조선일보와 국민의힘 사람들은 자신들이 리버럴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어이없는 망발이다. 우민이 봤을 때 리버럴의 기준은 뉴욕타임스(NYT)다. 과연 조선일보와 국민의힘이 NYT만큼 리버럴 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민이 봤을 때 진중권은 그냥 진중권이다. 과거 진보의 아이콘일 때와 지금이나 그의 스타일은 동일하다. 다만 공격 좌표가 바뀌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진중권이 호명되는 한국사회의 사상의 스펙트럼 변화다. 진중권에 환호하는 사람이나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나 이를 못 보고 있는 것 같다.     


  메신저에 함몰되지 말고 메시지를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수용하는 사회의 변화를 함께 읽어야 한다. 동시에 진중권을 메신저가 아니라 미디어로 바라보는 관점도 필요하다. 진중권 현상이 가능한 것은 1인 미디어의 시대가 만개했기 때문이다. 마샬 맥루헌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진중권이란 미디어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우민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한국사회의 사상 스펙트럼의 이동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어디 하나뿐이랴? 다른 메시지는 또 뭐가 있을가?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 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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