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거꾸로 읽기’를 왜 쓰는가?
아빠 요즘 뭐 써?
러브 스토리.
응? 공자에 대해 쓰는 거 거 아니었어?
맞아. 그게 사랑 얘기야.
그게 왜 사랑 얘기야?
공자와 그 제자들의 브로맨스거든.
허걱, 그럼 동성애 얘기야?
아니. 넌 '논어'가 다른 제자백가 책과 다른 점이 뭔지 알아?
공자가 쓴 책이라는 것만 알아.
'노자' '장자' '맹자' '손자병법' 같은 책이 엄청난 기예를 펼치는 솔리스트 연주곡이라면 '논어'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필요한 교향곡이야.
왜?
다른 책들은 한 명의 사상가가 자기 생각을 쭉 펼친다면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 간의 문답으로 이뤄져 있어. 때론 제자만 단독으로 등장해 솔로 연주를 할 때도 있고. 그래서 공자와 제자가 빚어내는 화음을 포착할 줄 알아야 해. 공자는 그 오케스트레이션의 지휘자라고 보면 돼.
아~ 뭔 말인지 조금은 알겠네. 다른 책들은 솔로가 노래하는 거라면 논어는 밴드나 합창단이 노래하는 거와 같다는 거지?
그렇지. 그래서 공자만 보면 안 돼.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는 대화 속의 숨겨진 함의와 뉘앙스, 제스처까지 봐야 해.
근데 그거랑 러브스토리가 무슨 상관이야?
공자는 완전 실패한 인생이었어. 무려 14년이나 중국 대륙을 돌면서 취업자리를 알아봤는데 결국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죽었어. 그런데도 제자가 3000명이나 됐어. 왜 그랬을까? 공자가 너무너무 매력적인 사람이었거든.
공자의 매력이 뭔데?
사람들은 공자가 도덕적인 성인군자라거나 고리타분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공자는 혁명가였어. 당시엔 신분질서가 뚜렷했는데 공자는 학문을 닦은 사람은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하고 다녔거든. 군자는 원래 왕을 뜻하는 용어였어. 근데 공자는 누구나 학문을 닦으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한 거야.
공자는 임금님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거 아냐?
그건 후대의 유학자들이 덧칠한 모습이고. 논어 속 공자는 결코 나라에 충성하라거나 임금에게 충성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 공자가 말하는 충은 자신이 믿는 신념에 충실하라는 뜻이었어. 심지어 자기가 살던 노나라의 실권자들은 물론 노나라 군주까지 비판한 사람이야.
엉? 엄청난 반항아였네. 근데 어떻게 처형이 안된겨?
공자는 그런 현실비판의 메시지를 결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어. 옛날의 사례를 끌어다 은근히 비판하거나 아무런 논평 없이 현재의 현상을 그대로 진술하는데 행간에서 그걸 읽어내게 했거든. 혁명가이긴 한데 부드러운 혁명가, 영어로 Soft Revilutionary였던거지. 그래서 역사적 배경이나 다양한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 없이 논어를 읽으면 뭔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공자의 제자의 제자들이 그걸 이용해서 공자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를 효도하나는 도덕적 메시지만 말씀하셨다고 중국 황제들을 속인 거야. 그러다가 그들 자신도 속아 넘어갔지.
그럼 공자에게서 직접 배운 제자들은?
그들은 그런 공자의 진가를 알았지. 공자는 가난한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를 일찍 여읜 데다 키가 2m가 될 정로로 컸고 얼굴도 사납게 생겼어. 그런 사람이 도를 말하고 덕을 말하니 얼마나 웃겼겠니? 아빠는 그런 공자를 ‘덩치 큰 돈키호테’라고 불러.
돈키호테?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란 인물을 창안한 것은 구닥다리 기사도 얘기를 꺼내는 당시 스페인 귀족들을 조롱하고 풍자하기 위해서였어.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도덕교과서 같은 말만 하면서 좌충우돌하는 똘아이로 그렸지. 그런데 계속 써가다 보니까 이 돈키호테가 점점 멋있어지는 거야. 기사도 정신의 고귀함을 실제로 실천하는 존재는 당시에도 없었거든. 그런데 돈키호테는 죽을 때까지 그걸 실천하며 사는 거야.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물론 세르반테스 자신도 감동시키는 존재가 된 거지.
공자가 그렇단 말이야?
비슷해. 처음엔 저런 이상주의자의 얼척없는 말을 누가 들어주겠어하고 비웃음의 대상이었다가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고결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게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켰거든. 세상은 말도 안 되게 불평등하고 온갖 불의가 벌어지는데 공자는 "내게 나라를 맡기면 누구나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라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외면받았단 말이야.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그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그 씨앗을 삼으려는 공자에게 반한 제자가 점점 늘어나 3000명을 헤아리게 됐고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다 죽어가는 제자도 나오기 시작한 거야. 그제야 사람들도 놀라면서 공자를 다시 보게 된 거지.
공자에게 그런 매력이 있다 치고 그럼 '논어'가 왜 브로맨스라는 거야?
조폭영화를 보면 의리 짱인 보스를 위해 부하들이 목숨을 바치는 장면이 감동적일 때가 있잖아. 공자에 대한 제자들의 감정이 그랬어. 저 사람을 위해선 내 한 목숨 바쳐도 여한이 없겠다. 그 제자들 중에는 공자만큼이나 멋있는 사람도 수두룩했거든. 공자는 또 그런 제자들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고. 그래서 혹여 제자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다 죽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했지. 공자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도덕주의자가 아니라 술과 시를 사랑하고 음악에 심취한 정감 넘치는 사람이었거든. 아빠가 쓰는 건 그런 공자와 제자들 간의 인간적 드라마야.
그래? 일단 알았으니까 다 써봐. 그때 내가 함 보고 진짜 러브스토리인지 아닌지 판단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