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편 미자(微子) 제2장
유하혜는 재판관이 됐다가 세 번이나 파직당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대는 아직도 떠날 수 없겠는가?” 유하혜가 말했다. “도를 올곧게 지키며 다른 사람을 섬긴다면 어디를 간들 세 번은 파직당하지 않겠습니까? 도를 굽혀 다른 사람을 섬길 거라면 반드시 부모의 나라를 떠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柳下惠爲士師三黜.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유하혜위사사삼출 인왈 자미가이거호 왈 직도이사인 언왕이불삼출 왕도이사인 하필거부모지방
앞서 얘기했듯 유하혜는 공자보다 150여 전 노나라 대부를 지낸 인물입니다. 주공의 5대손인 노효공의 후손이므로 성은 주나라 왕실과 같은 희(姬)이지만 씨는 전(展)이고 이름은 획(獲)입니다. 자는 금(禽) 혹은 계(季)이며 식읍(食邑)이 유하(柳下)이고 죽은 뒤 받은 시호(諡號)가 혜(惠)였습니다. 따라서 유하혜는 후대 사람들이 그를 높여 부른 호칭입니다.
삼환정치가 싹트고 발아한 노장공-노민공-노희공 시절 인물입니다. 노장공은 친정 오라비와 불륜행각을 벌이다 들키자 남편(노장공의 아버지 노환공)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팜파탈(문강)의 아들이었습니다. 또 노장공의 아들인 노민공과 노희공의 어머니는 문강의 불륜 상대였던 제양공의 딸(정비였던 애강의 여동생 숙강)이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죽인 사람의 딸이 어미였던 겁니다.
그렇게 정통성이 취약하다 보니 노장공은 자신의 배다른 형제인 맹손(경보)-숙손(숙아)-계손(계우)을 중용해 바람막이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아비의 원수인 제나라 핏줄이 섞인 적자들을 놔두고 애첩이 낳은 서장자 희반을 후계로 삼으려 한 통에 노장공이 죽고 난 직후 궁정혈투가 벌어집니다. 이때 계우가 제나라를 등에 업고 제나라 핏줄의 조카인 노민공과 노희공을 잇따라 제후의 자리에 앉혀주곤 그 대가로 경상의 자리를 대물림하게 됩니다. 혼자 먹기엔 파이가 너무 크다는 생각에 같은 핏줄인 숙손, 맹손 씨와 손을 잡고 노나라 정계의 마피아조직을 결성한 것입니다.
유하혜는 바로 이 시기 노나라 대부였습니다. 노나라 종실의 일원이지만 재판관 또는 형옥(刑獄)의 일을 관장하는 사사(士師)라는 낮은 직책을 맡았습니다. 맹자가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노장공 부자가 더러운 임금이라면 그 핏줄을 받았음에도 공자가 주군으로 모신 노정공은 얼마나 깨끗한 임금일까요?
사실 유하혜와 관련한 일화를 보면 그는 강직하기보다는 온화하고 유연한 인물이었습니다. 추운 밤 길거리에서 동사할 위기에 처한 여인을 보고 집으로 데려가 품에 안고 온기를 나눠주며 재워줄지언정 정을 통하진 않았다는 ‘좌회불란(坐懷不亂)’의 고사가 대표적입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했을 때 말로 설복해 군대를 되돌리게 했다는 일화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나라와 관련한 유하혜의 또 다른 일화는 좀 더 음미해볼 만합니다. 제나라에서 노나라의 국보인 잠정(岑鼎)이란 오래된 청동 세발솥을 탐내자 노장공이 몰래 모조품을 만들어 선물하는 꼼수를 씁니다. 제나라에서 이를 의심해 “유하혜가 진품이라고 말하면 믿겠다”고 압박해 들어옵니다. 당황한 노장공이 “한 번만 거짓말해 달라”고 유하혜에게 사정합니다.
개인적 신망을 지키느냐 국가의 보물을 지키느냐 하는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하혜는 “군주께서 잠정을 진귀한 보물로 여기시는 것처럼 저는 정직과 성실을 보물로 여깁니다”라고 답합니다. 군주가 귀히 여겨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어야 하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신의가 중요함을 각성시킴으로써 ‘꿀 먹은 벙어리’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유하혜는 이처럼 온화하고 평화롭게 문제를 풀어가 노나라의 현인 소리를 들었습니다. 맹자도 백이, 이윤, 공자와 더불어 4대 성인의 하나로 유하혜를 꼽으면서 그 특징으로 화(和)를 들었습니다. ‘속 좁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들고, 야박한 사람을 후덕하게 만드는 좋은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금도를 지키면서도 지혜롭게 해법을 강구해내는 그가 세 차례나 파직당했다는 건 곧 삼환정치가 얼마나 문란했는지에 대한 고발장이나 다름없습니다. 구체적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삼환이나 그 졸개들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결과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주변에서 참다못해 “차라리 다른 나라로 망명해 당신의 능력과 뜻을 펼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던 것입니다.
유하혜의 답은 뼈를 때립니다. 첫 번째 어디를 가든 도를 올곧게 지키려다 보면 삼세 번 가량 파면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금도를 지키면서 조직생활을 하는 게 힘들다는 소리입니다. 그게 억울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출세해보겠다고 한다면 굳이 다른 나라를 갈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이를 어딜 가나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이 그만큼 피곤하고 힘들다는 푸념 내지 한탄으로 듣는다면 처세론 수준의 이해를 넘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그보다는 좋은 정치라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라고 새겨들어야 군자학에 입문했다고 할 만합니다. 그만큼 풀기 어려운 난제이기에 손익을 계산하는 소인이 아니라 고매한 이상을 꿈구는 군자가 뛰어드는 것입니다.
어쩌면 유하혜와 달리 부모의 나라인 노나라를 떠나 자신을 기용해줄 군주를 찾아다닌 공자의 사례야말로 유하혜의 말이 정곡을 찔렀음을 입증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출세에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도를 올곧게 지키며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든 난제 중의 난제가 될 수밖에 없음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공자의 위대함은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도 온몸으로 부딪혀 보는 그 진정성의 실천에 있습니다. 처음엔 바보라고 놀리다가도 계속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오르고 또 오르는 사람을 볼 때의 숙연한 감동을 체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