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편 미자(微子) 제1장
미자는 떠나버렸고, 기자는 종이 됐으며, 비간은 간언하다 죽었다. 공자가 말했다. “은나라에 세 명의 어진 인물이 있었느니라.”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미자거지 기자위지노 비간간이사 공자왈 은유삼인언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태평성대를 연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해도 어진 정치인이란 뜻의 인자(仁者)로 거명되는 은나라 말기의 충신입니다. 세 명은 모두 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자수신)의 신하로 주왕의 잘못을 간했다가 곤욕을 치릅니다. 상소가 가납되지 않자 미(微)나라 제후였던 미자는 자신의 봉국으로 낙향해야 했고, 태사(太師․왕의 스승)의 지위에 있던 기자는 일부러 미친 척하다가 종이 됐고, 소사(少師․태자의 스승)인 비간은 결국 처형된 뒤 “성인의 심장엔 구멍이 일곱 개라던데 정말인가 확인해보자”는 주왕의 엽기적 호기심 충족을 위해 심장까지 적출됐습니다.
의문이 있습니다. 주왕의 잘못을 간한 사람은 이들 세 명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구후(九侯), 악후(鄂侯), 주후(周侯‧훗날의 주문왕 희창)라 하여 3명의 충신이 또 있었습니다. 이중 악후는 주왕에게 시집보낸 딸이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는다 하여 함께 처형된 뒤 젓갈로 담가졌고, 악후는 주왕의 잘못을 지적하다 역시 같은 신세가 됐습니다. 주후는 감옥에 갇혔다가 대신 살해된 맏아들의 고깃국을 모르고 먹었다 다 토해낸 굴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와신상담 끝에 그 아들인 희백(주무왕) 때 복수에 성공합니다.
주후는 성군의 반열에 올랐으니 제외된다 하더라도 구후와 악후, 특히 주왕의 잘못을 간했다가 살해된 악후의 경우엔 미자, 기자, 비간과 같은 반열에 올릴만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유독 은나라의 인자(仁者)로 그 세 명만 딱 짚어서 거론합니다. 거기엔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세 명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주왕의 종실 어른이란 겁니다. 그래서 3명 모두 성(姓)이 자(子)입니다. 세 사람의 본명은 각각 미자는 자계(子啓), 기자는 자서여(子胥餘) 또는 자수유(子須臾), 비간은 자비(子比)입니다. 또한 각각 미(微)와 기(箕), 간(干)이라는 작은 봉국의 제후이기도 했습니다. 미자와 기자의 자(子)는 자작(子爵)이란 작위의 약칭이고, 비간은 이름 뒤에 봉국의 이름을 붙인 일종의 시호입니다.
‘맹자’에 따르면 3명은 모두 주왕의 삼촌입니다. 다만 ‘여씨춘추’에 따르면 미자는 주왕의 어머니가 후궁시절에 낳은 서장자이고 주왕은 정실이 된 뒤 낳은 적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했다고 나옵니다. 논어의 주석서들이 보통 미자를 서장형(庶長兄)이고, 기자와 비간을 주왕의 친척 내지 숙부라고 세분돼해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그런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맹자’의 기록을 좇아 세 명 모두가 주왕의 삼촌이라고 풀이하면 왜 그들을 콕 찍어서 ‘은나라의 어진 사람은 셋뿐’이라고 했는지가 분명해집니다. 노나라 공실의 ‘영원한 삼촌’이라 할 계손씨, 숙손씨, 맹손씨와 비교하기 위해 미자, 기자, 비간을 등장시킨 겁니다. 은나라 주왕의 삼촌들은 임금이 잘못된 길을 갈 때 목숨을 걸고 바로 잡으려 하였는데 이 노나라 제후의 영원한 삼촌 가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는 일갈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장의 내용은 공자가 말한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또 다른 현실비판 사례라고 봐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