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양화(陽貨) 제22장
공자가 말했다. “하루 종일 배불리 먹고 마음을 쓰는 데가 없는 사람은 뭔가를 이루기 어렵다. 장기나 바둑도 있지 않느냐? 그런 것을 해서라도 마음 쓰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
子曰: 飽食終日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奕者乎, 爲之猶賢乎已.
자왈 포식종일무소용심 난의재 불유박혁자호 위지유현호이
인간의 종명인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도출됐습니다. 인간은 정말 가만 놔둬도 생각이란 걸 하고 살까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대부분의 인간은 그냥 놔두면 절대 사유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보세요.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기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멍 떄리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 투생이잖아요?
생각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저절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똑같은 것을 반복하길 선호하지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사치 따위는 사절하는 존재입니다. 현실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혀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들뢰즈는 ‘인간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게끔 된다’라고 말합니다.
공자도 비슷한 지점을 짚습니다. 하루 종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마음 쓰는 일(用心)을 멈추는 게 인지상정이란 겁니다. 동양에선 보통 마음을 심장(heart)으로 이해할 때가 많은데 공자가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두뇌(mind)에 해당합니다. 다만 그렇게 무의도식 하다 보면 뭔가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차라리 박혁자(博奕者)라도 하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박(博)은 판 위에서 벌이는 게임을 말하고 혁(奕)은 돌을 갖고 하는 게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보통 장기와 바둑으로 번역하는데 주사위놀이 같은 놀음도 해당합니다.
군자라면 도박을 멀리해야 하지만 소인의 경우 아무것도 안 하느니 도박이라도 하면서 두뇌를 쓰는 게 낫다는 겁니다. 요즘 게임에 빠져 사는 아이들이 반가워할 이야기입니다. 게임과 도박이 끊임없이 문제를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수학문제집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계속해서 어려운 문제를 던져줘 머리를 쓰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대개 아이들은 수학문제집은 거들떠도 안 보고 게임에만 매달리죠. 왜 그럴까요?
게임은 구체적 현실을 더 가깝게 모방하는 반면 수학문제집은 그런 구체성보다 추상성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또 게임은 반복성이 강한 반면 수학문제집은 반복성보다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요구합니다. 박혁자의 한계가 여기서 노정됩니다. 제대로 된 용심이라면 추상성과 창조성이 높아야 하는데 박혁자는 유사용심에 가깝습니다. 용심의 레벨이 1, 2 단계를 넘지 못하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보통 루틴에 의존합니다. 안전성과 효율성이 점검된 방법을 반복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그걸 매뉴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루틴과 매뉴얼이야말로 '어떻게하면 생각같은 걸 안하고 살 수 있을까?"하는 인간 고민의 산물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루틴과 매뉴얼이 먹히지 않는 순간 인간의 사고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평소 훈련이 잘 된 사고 회로와 그렇지 못한 사고 회로의 대처능력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훈련이 잘된 사고 회로란 용심에 능한 것을 말합니다. 첫째 상상력, 둘째 창의력, 셋째 추상성이 높은 사유에 능한 것입니다. 상상력이 높다는 것은 평소라면 생각도 못할 문제를 스스로 생각해내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창의력이 높다는 것은 그렇게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정답지가 없는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는 경우를 상상해보세요. 마지막으로 추상성이 높다는 것은 특정 분야에서 도출된 질문과 해답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기존의 게임을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게임을 창조해냅니다.
공자의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이런 용심을 갖춘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종일 포식만 해도 됩니다. 겉으론 차이가 안 나지만 머릿속에선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으니 포식할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몸은 안 쓰고 머리만 쓰는 사람을 먹물이라고 비하하는 한국적 반지성주의 신화가 깨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열심히 몸 놀려 일하지만 시간만 나면 멍 때리는 사람보다는 무위도식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머리를 돌리는 사람이 세상에 훨씬 유익합니다. 물론 그 용심을 쓰는 사람이 지 욕심 채우기 급급한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