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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Mar 14. 2021

묵언전도 vs. 공자가 기가 막혀

17편 양화(陽貨) 제19장

  공자가 말했다. “나는 말없음을 실천하고프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이 무엇을 전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계절이 운행되고 만물이 생성하는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자왈   여욕무언     자공왈   자여불언   즉소자하술언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자왈    천하언재   사시행언   백물생언  천하언재



   ‘노자’에 등장하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연상시키는 대화입니다. 말할 수 있는 도은 이미 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구절에 기초한 서양적 세계관과 달리 언어 이전의 세계를 꿈꾸는 동양적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말씀은 인위적인 것이니 태초의 상태처럼 말없는 상태로 살고 싶다는 것이지요.


  내로라하는 논어 주석가들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싫어하고 눌언민행(訥言敏行)을 선호하는 공자답게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라는 깊은 뜻이 담겼다고 풀이합니다. 혹자는 언어에 능하지만 역행에 힘쓰지 않는 자공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 한 말이라고도 해석합니다. 둘 다 언어에 대한 불신과 염오의 의미가 담겼다고 보는 겁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주목하는 단어는 ‘하고자 할 욕(欲)’입니다. 공자는 “말없이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게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말없이 살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은 것입니다. 그건 다시 말하면 “말없이 살 수 없어 안타깝다”는 뜻이니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뒤집어 표현한 것입니다.


  '논어' 최후의 장(20편 ‘요왈’ 3장)에서 살펴봤듯이 공자는 언어의 남용과 오용을 비판했을지언정 결코 언어의 존재가치를 부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헤아려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깨치는 지명(知命)과 지상의 통치 원리를 터득하는 지례(地禮) 다음으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언어에 통달해야 한다는 지언(知言)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것은 반어법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계속 말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엔 유교 경전인 '시경', '서경', '춘추'도 완비되지 않았기에 공자가 집필하거나 편집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자의 말이 곧 교본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쉼 없이 떠들어야 하는 공자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래서 일종의 푸념을 한 겁니다. “자공아, 나 말 좀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자공이 스승의 그런 마음을 이해 못했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의 중요성을 추켜올리면서 “힘내시라”고 응원성 멘트를 날린 겁니다. 이에 한껏 고무된 공자가 은근슬쩍 자신과 하늘을 비견하는 발언까지 꺼내 들고 만 걸까요?


  “하늘은 말이 없어도 세상만사 척척 다 알아서 돌아가지 않느냐, 그런데 왜 나는 계속 떠들어 대야 한단 말이냐?” 이건 살짝 오버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자공이나 안회가 그런 말을 했으면 또 몰라도 자기 스스로를 하늘에 비견하는 것은 자만심의 표출로 오해사기 십상입니다.


  평소의 공자라면 이런 말을 꺼내놓고는 머쓱해져서 “농담이다”라거나 “하늘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같은 말로 물타기를 시도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선 그런 첨언이 일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학들이 “말없이 도와 덕을 실천하는 무언이행(無言而行)이 곧 하늘의 이치인 천도(天道)임을 역설하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진리가 언어로 포착될 수 없다고 주장한 도가(道家)의 가르침은 될 수 있어도 언어에 통달해야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교화시킬 수 있다고 믿은 공자나 유가(儒家)의 가르침은 될 수가 없습니다. 훗날 도가와 선불교에 맞서기 위해 공자 말씀을 그 연장선상에서 풀어내려 한 송나라 유학자들의 억측이 낳은 산물일 뿐입니다.


 그럼 공자는 왜 자신과 하늘을 비견하는 발언을 철회하거나 물타기 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일까요? 당시의 봉건적 시대상황 때문에 차마 말할 수 없는 것까지 딱 부러지게 설명해달라는 재아와 염유 같은 헛똑똑이 제자들 때문에 복장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혈통과 가문이 아니라 학문적 성취를 통해 누구나 통치자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3년상과 군자론으로 펼쳤는데 노둔한 제자들이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붙들고 떠들어대니 열불이 난 겁니다. 또 노나라의 삼환 정치과 그에 놀아나는 노나라 제후를 대놓고 비판할 수 없어 술이부작(述而不作)의 화법을 구사한 것인데 그 행간을 읽지 못하고 그게 이치와 예법에 맞네 아니네 헛소리를 해대니까 부아가 치민 겁니다. 한마디로 여기서 공자는 “진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전하는 것”이라 선언한 게 아니라 “답답해서 말문이 막힌다, 막혀”라고 통탄을 한 겁니다.


 그걸 제일 잘 알아듣는 제자는 안회와 자공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자공을 붙잡고 “야, 재들 왜 저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 암만 돌려 말해도 못 알아들으니 나 그냥 말 끊고 벙어리로 살까?”라고 푸념을 한 겁니다. 자공도 처음엔 ‘제자들에게 하나하나 말로 가르치시려니 힘들어서 그러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가 그다음 말을 듣고 바로 눈치를 챘을 겁니다. ‘멍청한 놈들, 스승님이 차마 말 못하는 것은 미뤄 짐작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하늘 얘기 까지 꺼내실까!’ 부처와 마하가섭이 연꽃을 들어보인 것만 보고도 서로의 생각을 읽고 웃음을 나눴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경지는 바로 그다음 순간에 찾아온 것 아닐까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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