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양화(陽貨) 제18장
공자가 말했다. “간색인 자주색이 정색인 붉은색의 지위를 빼앗는 것을 싫어하고, 정나라의 선정적 음악이 주나라 제례음악(정악)인 아악을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하고, 말재주로 나라를 뒤엎는 사람을 싫어한다. "
子曰: 惡紫之奪朱也, 惡鄭聲之亂雅樂也, 惡利口之覆邦家者.
자왈 오자지탈주야 오정성지난아악야 오리구지복방가자
공자를 보수적이라고 평가하게 만든 구절 중 하나입니다. 원조와 정통을 좋아하고 파생과 변주를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과도한 해석입니다. 어떤 요리가 유행할 때 그 맛의 원조가 어디냐를 따지는 것은 보수냐 진보냐 하고는 상관없는 인지상정이기 마련이므로 거기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색채, 음악과 언어라는 3가지 범주에 대한 비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셋은 각각 시각, 청각 그리고 그것이 종합된 언술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시각에서는 정통색인 붉은 색인 주홍이 있고 거기에 파란색을 섞어 영롱한 빛을 내는 자주가 있습니다. 주나라에서 군주의 색은 본디 주홍이었는데 춘추시대가 되면서 좀 더 현란한 자주가 대신하게 됩니다. 공자는 그런 유행의 변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합니다.
이어 음악에서 주나라 전통 제례음악인 아악(雅樂)과 주나라 인근 제후국인 정나라의 음악인 정성(鄭聲)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아악이 먼저이고 정성은 그에서 파생된 음악인데 기교가 많이 가미돼 세련되고 섬세하다는 장점과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현혹시킨다는 단점이 뒤섞여 있습니다. 공자는 여기서도 변용된 정성보다 원형인 아악의 손을 들어줍니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여기선 이구(利口)라는 표현만 등장합니다. '유창한 입(通口)'이라는 뜻으로 현란한 말솜씨를 지칭합니다. 방가(邦家)는 국가(國家)를 뜻합니다. 유방(劉邦)이 한나라 초대 황제가 되면서 황제의 한자명을 기피하는 기휘(忌諱)의 전통에 의해 방가를 국가로 표기한 것이 오늘날 국가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리구지복방가자(惡利口之覆邦家者)’는 세치 혀를 잘 놀려 나라를 전복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선 비교의 대상이 빠져있습니다. 이구에 대한 반대말은 ‘말더듬이’라는 뜻의 건흘(謇吃)입니다. 하지만 원조와 파생이란 과점에서 보면 말더듬이(건흘)가 유창한 입(이구)의 원조가 될 순 없습니다. 따라서 건흘 보다는 오남용되지 않은 순박한 형태의 언어일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도 그 어색함을 감지했는지 비교대상을 뺍니다. 대신 그 부작용을 다루는 논리적 비약을 감행합니다. 앞의 색채와 음악의 부작용은 원조와 정통의 지위를 빼앗고 어지럽히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이구는 아예 나라를 뒤집어엎어버립니다.
여기서 공자가 겨냥한 것이 뚜렷해집니다. 도와 덕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려고 함부로 놀리는 말이 진짜 큰 문제임을 일깨우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공자는 언어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타락한 형태 또는 언어가 오용되고 남용된 형태인 이구를 공격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를 망각한 채 언어 그 자체를 비판하고 공격한다는 해석은 오히려 노장사상에 침윤되고 설복당한 해석이 되고 맙니다. 공자의 어법을 따라가 보면 주홍과 아악처럼 본래의 언어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건 그 언어를 타락시키고 오용하고 남용한 이구입니다. 따라서 이구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해선 언어 그 자체에 통달하는 지언(知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색(知色)과 지음(知音)이 부족하면 예법과 민심이 흔들리는 정도지만 지언이 부족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이 장의 진짜 메시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