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양화(陽貨) 제17장
공자가 말했다. “교묘한 말로 현혹하고 가식적인 낯빛으로 속이는 사람 중에 어진 이는 드물다.”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
공자의 언어 불신을 대표하는 구절로 꼽히는 구절입니다. 1편 ‘학이’ 제3장에 나오는데 17편에 고스란히 다시 등장해 공자가 말 잘하는 사람을 정말 미워한다는 확정적 증거로 인용되곤 합니다. 얼마나 싫어했으면 표현 하나 바뀌지 않고 똑같이 두 번씩이나 등장하겠느냐는 거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저 대목을 ‘청산유수처럼 말 잘하는 놈치고 어진 놈을 보지 못했다’고 새기는 게 맞을까요? 외교 무대에 나섰을 때 자공이나 재아뿐 아니라 공자 또한 예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강대국인 제나라의 노회한 군주(제경공)와 춘추시대 최고의 선진문물을 자랑했던 제나라 신하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순간의 공자 역시 청산유수처럼 말을 늘어놨을 텐데 그럼 그 순간의 공자 역시 어진 게 아닌 걸까요?
교언영색의 한자 그대로의 뜻은 ‘말(言)을 꾸미고(巧) 낯빛(色)을 좋게 한다(令)’는 겁니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상대가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억지로 좋은 표정으로 대한다는 뜻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뜻보다는 아부를 잘한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뜻 역시 ‘윗사람을 대할 때 말과 표정을 바꿔가며 아부하는 이들 중에 어진 사람이 드물다’로 새겨야 합니다.
노파심에 다시 말하지만 교언영색은 그와 짝을 이루는 곡학아세(曲學阿世)와 더불어 출세하려고 아부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지 단순히 말 잘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왜 ‘말 잘하는 놈들 중에 어진 놈이 드물다’로 둔갑한 걸까요?
훗날 공자의 적통을 이었다고 자부한 맹자는 공자를 본받아 천하 유세를 다닐 정도였으니 말을 청산유수 같이 잘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 공자 학맥을 전해준 자여(증자)와 자사(공급)가 말이 좀 어눌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신 이들은 효(孝)와 경(敬) 같은 수직적 질서를 강조했기에 윗사람을 대할 때 낯빛을 바꾸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을 할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자칫 “말은 못해도 아부는 잘 하네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말빨 좋기로 유명했던 자장, 자하, 자유 같은 라이벌 학파의 리더에 대해선 “말만 앞서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고 비판도 할 겸 윗사람에게 너무 아첨떠는 것 아니냐는 자신들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악마의 편집’을 감행했던 건 아닐까요? ‘덕치’를 강조한 맹자와 ‘심성’을 강조한 주자는 그에 부화뇌동했고... 물론 이건 저만의 뇌피셜일 뿐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