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양화(陽貨) 제15장
공자가 말했다. “비루한 사람과 함께 군주를 섬길 수 있겠는가. 그런 인간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안달하고, 손에 넣으면 잃어버릴까봐 근심한다. 진실로 잃어버릴까 근심한다면 못할 짓이 없을 것이다.”
子曰: "鄙夫可與事君也與哉?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 苟患失之, 無所不至矣."
자왈 비부가여사군야여재 기미득지야 환득지 기득지 환실지 구환실지 무소부지의
소인은 '못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 봐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3가지를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富), 귀한 사람이 되는 것(貴),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세 있는 사람이 되는 것(權)입니다. 자본주의 시대 이는 하나로 수렴됩니다. 돈 많은 사람입니다.
고대에도 하나만 갖추면 나머지 둘은 자연스럽게 주어졌습니다. 왕족이나 귀족의 혈통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러다 춘추전국시대가 되면서 귀한 사람으로 타고나지 않아도 그 세 가지 목표를 이루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여불위처럼 장사꾼이 돼 거부가 되는 사람도 나오고, 소진과 장의처럼 세치 혀만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이도 등장하게 됩니다. 또 이를 발판으로 상앙이나 이사처럼 일인지하만인지상의 권세를 맛보는 이도 있습니다. 심지어 나라 고조 유방처럼 별 볼 일 없던 한량이 최고 권력자(황제)가 되기까지 합니다.
소인은 이를 보고 그처럼 되겠다고 꿈꾸는 이들입니다. 반면 군자는 소인과 달리 부귀권세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부귀권세를 획득함으로써 천하를 태평케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부귀권세의 획득방식을 놓고도 소인과 군자는 구별됩니다. 소인은 보통 찬스를 노립니다.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어내고 그에 편승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이 목표를 이루고자 합니다. 군자는 이와 달리 도와 덕의 연마를 통해 이를 달성하고자 합니다. 도가 세상의 형세를 읽어내게 해준다면 덕은 편법이나 속임수가 아니라 정당한 능력 발휘를 통해 부귀권세를 추구하도록 합니다. 그래야 부귀권세를 얻은 뒤에도 정정당당하게 경세제민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여기서 말하는 비부(鄙夫)는 그냥 소인이 아닙니다. 자질이나 식견이 소인에 머물면서 군자연하는 대부를 말합니다. 대인(大人)의 지위에 있지만 소인의 그릇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군자인지 가짜(위군자)인지를 어떻게 감별할 수 있을까요? ‘환득지(患得之)’와 ‘환실지(患失之)’라는 표현이 키워드입니다. 목표하는 지위를 얻지 못하면 안달복달하고 그 지위를 얻은 뒤에는 어떻게든 밀려나지 않으려고 꼼수를 쓰는 사람입니다.
드라마 ‘하얀 거탑’에 나오는 장준혁(김명민 분)이 대표적 인물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천재의사임에도 외과과장이란 타이틀을 따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감수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지른 자신의 실수와 과오에 발목이 잡혀 모든 것을 잃고서야 부귀권세가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장준혁은 솔직하기라도 합니다. 요즘의 위군자들은 김용의 무협지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악불군 같은 철저한 위선자입니다. 스스로 군자가 못된다며 '불군(不君)'을 입에 달고 살며 무림지존이 되는 길엔 아무런 욕심도 관심도 없는 철저히 겸손한 무림 정파로 행세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무림 비급인 ‘규화보전’을 얻기 위해 자작극을 펼친 것으로도 모자라 제자는 물론 딸까지 희생시키는 희대의 악당임이 드러납니다. 진짜 조심해야 할 비부는 도덕군자처럼 행세하면서 실속은 다 챙기는 악불군 같은 진짜 악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