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양화(陽貨) 제13장
공자가 말했다. “향원은 덕의 적이다.”
子曰: "鄕原, 德之賊也."
자왈 향원 덕지적야
향원(鄕原)이란 표현은 ‘논어’에 딱 한 번만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그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직설을 피하는 공자가 대놓고 덕의 적이라고 단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향원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인터넷에선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노나라 사람이라고 특정인설까지 등장했습니다만 근거자료가 없어 신뢰하기 힘듭니다. 공자가 미워했던 동시대 노나라 사람은 두 명을 꼽을 수 있습니다. 17편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양화(陽貨)와 공자가 대사구에 취임하고 7일 만에 처형했다는 소정묘(少正卯)입니다.
본명이 양호(陽虎)인 양화는 노나라 정치를 좌지우지한 계손씨 가문의 가재로 반란을 일으켜 노나라의 전권을 장악하려다 실패한 인물로 공자와 외모가 비슷해 공자가 더욱 싫어했습니다. 소정묘는 노나라의 대부였다는 기록과 공자의 라이벌 학당 선생이었다는 기록이 엇갈리는데 구체적 잘못은 적시하지 않고 ‘소인(小人)의 걸웅’이란 이유만으로 주살했다고 하여 그 실체가 몹시 의문시되는 인물입니다. 만일 향원이 특정 인물이라면 양호나 소정묘의 자나 호쯤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향원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봐야 할 겁니다.
그럼 일반명사로서 향원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주희는 "일정 지역 내의 독실한 인물(愿人)"이라 풀었습니다. 愿은 ‘삼갈 원’으로 새기는데 공손하고 성실한 사람을 말합니다. 다산 정약용 역시 “일정 지역 내에서 도덕적 삶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라고 대동소이하게 풀었습니다. 쉽게 말해 고을 내에서 신망이 높은 사람이 곧 향원인 것입니다. 하지만 신망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덕의 적이라 비판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맹자’를 봐야 합니다. 향원은 춘추전국시대 다른 문헌에선 보이지 않는데 ‘맹자’에만 등장합니다. 바로 ‘논어’의 이 대목을 짚으며 그 뜻을 캐묻는 제자에게 맹자가 답한 내용입니다. ‘맹자’의 맨 마지막 장인 14편 제37장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맹자도 엄청 싫어한 유형의 인물이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향원은 비판하려 해도 딱 꼬집어 거론할 것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데가 없다. 세속에 쉽게 동화하고 더러운 세상에 잘 적응한다. 진실되고 신망 있는 척하며 청렴한 듯 행동하니 대중이 좋아하고 스스로도 올바른 사람이라 여기지만 요순의 도에 부합하는 인물이 못된다. 그래서 덕의 적이라고 말씀하신 거다. 공자 가라사대 '비슷하지만 거짓인 것(사이비)을 미워한다' 하셨다… 향원을 미워하심은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하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향원은 사이비 군자, 곧 위군자인 것입니다. 주변에서 덕이 높다는 평판을 받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심보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덕담만 건네는 인물입니다. 맹자가 말한 수오지심(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만사에 도통한 척하지만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고 이를 구현하려는 마음은 없이 낙화유수처럼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 게 최고라 여기는 처세의 대가입니다. 좋게 말하면 무골호인, 나쁘게 말하면 닳고 닳은 속물입니다.
공자가 이런 향원을 격하게 미워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향원은 공자 가르침의 진수는 외면하고 그 스타일만 흉내 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말한 중용(中庸)은 옳고 그름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분명히 나누기 어려운 사안을 만나면 진실을 추구하되 상대를 배려하는 충서(忠恕)의 자세로 신중과 균형을 유지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향원은 이를 산술적인 신중과 균형만 유지하는 것으로 대체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처세술로 격하되고 맙니다.
후대로 가게 되면 냉소적인 향원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비판하고 저것도 비판하면서 “세상은 원래 그렇게 불공평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냉소와 허무에 물든 향원이 등장합니다. 어느 정도 지적 훈련을 쌓아 상대의 약점을 기막히게 공격하고 자신의 약점은 노출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입으로는 정의와 도덕을 달고 살지만 정작 행동은 실속과 편리를 추구하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snob, 우리말로 속물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